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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으리로다(마19:16-30)

어떻게 거듭나는가?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문지방을 넘어 그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에 대한 한 청년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며 새로운 차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시고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앞에, 한

사람이 나아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성경에는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에 대해 물었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에는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질문에 답을 줄 한 사람,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지, 그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4-7).”


어린 아이 같은 자

오늘 본문의 청년도 니고데모와 같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신실하게 율법을 지키고 따르며 삶을 구별했지만, 그럼에도 내면에 ‘영생’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주님은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이 계명들은 이미 청년이 준수하고 있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에게는 스스로 쌓아왔던

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내면에서 느끼고 있던 불안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며 가난한 자들을 힘써 돌보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생’에 대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장 근본적이면서 그의 삶을 흔드는 한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동일한 이야기를 마가복음은 다음처럼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막10:21).”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며 율법을 지켜온 이 청년이 느껴왔던 불안함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이 청년은 사실 영원한 세계의 가치보다 이 땅에 속한 애정이 더 컸습니다. 그가 행하였던 신앙적 행위들은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삶의 반석을 ‘재정’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의지하며 삶을 맡기고 있던 대상이 ‘돈’, 맘몬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사건이 시작되기 전 바로 윗 구절에서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마19:14).” 어린아이는 순결함이나 겸손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아서 천국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과 ‘절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자를 뜻합니다. 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영생의 문제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절대적이길 축복합니다.

역사 속 수많은 신본주의자들이 삶의 중심에 기도와 예배를 두었던 것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기 위해, 그 분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길 축복합니다. 비전을 빙자한 우리의 야망과 모든 인간 관계까지,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그의 나라를 얻을 것입니다.


님을 따르는 자의 유업 –구원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은 청년의 물음에 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몹시 놀랐습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어부였던 베드로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던 한 날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 한 편에 그물을 내린 후 그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는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의 중심에는

예수님 한 분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받고 싶은 ‘이 땅에서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베드로의 질문에 답해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세상의 관점에서, 주님의 이 대답이 허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시작된 구원이 마라톤 종점까지 달려가듯 끝까지 이루어지기 위해,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이 필요합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였습니다. 사람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던 우리를 구별하여 변화시키는 생명의 능력,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가치를 더 깊게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


주님을 따르는 자의 유업 –교회 공동체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주님을 따르는 자가 받을 또 다른 축복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구속된 당신의 자녀들을 몸 된

‘교회’로 부르시고 ‘교회’안에서 영적 가족을 만나며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가도록 하십니다. 세상과 구별된 부르심의 공동체, 교회를 누리길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약속된 능력이 우리로 마지막 그날까지 달려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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