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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예배, 요소와 결과(마17:1-13)

모세와 엘리야의 의미

예배는 신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어지는 신비여야

합니다. 본문의 변화산 사건은 그 신비에서 시작되는 예배의 요소와 결과를

보여줍니다. 먼저,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이 의미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일신 야훼 신앙을 회복시킨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들은

피조물의 모형을 따라 만든 수많은 신상들 속에서, 온 우주를 그 뜻대로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누구인지 밝히 드러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개별적 상징성도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 말씀을

상징한다면, 엘리야는 능력, 신령을 상징합니다. 말씀의 본체이시며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께 나아갈 때, 모세가 상징하는 율법적 요소와 엘리야가

상징하는 신령의 요소를 모두 통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견고한 진리의 말씀과 동시에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신령한 체험으로 주님을 예배하길 축복합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삶, 곧 로마서 12장이 말하는 산 제물

되어 순종으로 올려드리는 예배의 삶에 성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하는 자 –첫째, 신령과 진정을 안다

우리가 스스로를 예배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예배를 사모한다면,

다음의 조건들을 이해하고 동시에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이 진리,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라면 ‘신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형식과 틀에 매이지 않고 어디서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타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장소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주님을 예배합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예배하는 자 –둘째, 주님만 높인다

예배는 오직 주님만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의 중심에는

사람이 정해 놓은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여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초막에서나 궁궐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지하 교회의

성도들은 때로 특별한 형식과 절차 없이, 그저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영이신 하나님, 곧 모든 시간 속에서 만물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 높여 드리며 예배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예배하는 자 –셋째, 주님과 함께 한다

셋째로, 예배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함께하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3:14). 예배자는 예배의 주체이신 주님을 분명히 느끼고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 –넷째,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나타나다

예배할 때,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더 많은

치유와 회복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주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이루어

드리는 예배가 경험되길 축복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예배하는 자 –다섯째,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예배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하나님은 종교적 제사를 드리기 보다 아버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마당과 성소를 지나, 지성소에서 우리가

만나길 기다리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는 예배자, 주님의 소리를 듣는

예배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예배하는 자 –여섯째,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예배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구하였던 한 가지는

주님의 영광, 그 아름다운 임재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27:4).


예배하는 자 –일곱째, 신령한 노래를 부른다

일곱 번째로 예배할 줄 안다는 것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무나 하나님을 노래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에 부르심 받은 자들이 구별되어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감동에 따라, 아름다운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주님께 올려드립시다.


예배하는 자 –여덟째, 영적 코이노니아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예배는 영적 코이노니아를 이룹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예배할 때,

한 분 주님으로 말미암은 한 마음이 됩니다. 기타 한 대로도, 때로 어떤

악기가 없어도, 한 성령 안에서 성도들의 소리가 영적 코이노니아를

이룹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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