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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 시스템 (대상13:9-14, 25:1-7)

대전환기의 날, 죽어야 하는 사람 -웃사 대전환기의날,세종류의사람이있습니다.오늘본문속웃사처럼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다윗처럼 깨어나는 사람, 오벧에돔처럼 살아나는 사람입니다. 웃사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법궤를 이방 신상을 옮기는 방식대로 소가 끄는 달구지에 싣고 오다가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웃사는 세속주의, 인본주의, 종교화를 상징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도 모르게 세속주의적 가치와 인본주의적 사상의 방식들이 학습화되고 습관화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가운데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키시는 이 때, 주님의 시간과 운행하심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종교화된 신앙생활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기도합시다.

대전환기의 날, 깨어나는 사람 -다윗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오게하리요하고다윗이궤를옮겨자기가있는다윗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오던 웃사가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믿는 일을 행하였는데,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웃사의 죽음은 이제 막 왕위에 오른 다윗을 흔들어 깨우고 회복시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본문 속 다윗의 깨어남은 세 가지의 회복을 말합니다. 첫째는 진리, 말씀의 회복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열정에 취하여 법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는 몸을 성결하게 한 레위인이 어깨에 메어 옮겨야 했습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하고모세가여호와의말씀을따라명령한대로레위자손이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대상15:13-15).” 만약 이 사건으로 다윗이 깨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이방인의 방식과 말씀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합주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행함을 주장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의 깨어남은 계시의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세의 성막이 아닌 다윗의 처소로 옮기는 일은 전통적인 시선으로 말씀(로고스)을 보는 자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며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씀을 받는 자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전하시는지 깨닫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있었기에, 다윗는 온 이스라엘 위에 멈추지 않는 찬송이 선포되는 다윗의 장막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삶에 적용되는 ‘레마’로 풀어지길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의 깨어남은 부르심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광신적이고 혼합주의적인 예배자가 될 뻔했던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통해 말씀을 회복했고, 로고스의 말씀이 하나님의 때와 뜻에 적용되어 작동되게 하는 지혜와 계시를 회복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부르심을 회복하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시대적 상황이 보이고 주님과 동역하는 부르심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전환기가이를때,주님의때를깨닫고시대를읽는눈이열리며 부르심과 비전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대전환기의 날, 살아나는 사람 -오벧에돔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대전환기에 살아난 사람, 오벧에돔입니다. 오벧에돔은 다윗의 용사 중 한 사람이었고, 다윗의 장막에 세워진 후에는 문지기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근거로, 오벧에돔을 레위인이라고 말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이방인, 가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사람 이름 앞에 지명을 넣는 것은 그의 출신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오벧에돔이 블레셋 지역인 ‘가드 사람’ 출신, 이방인 태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그 지역 사람인 오벧에돔에게 다시 맡겼다는 것이 상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 본문의 핵심이 있습니다. 법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가는 본문 속 상황은 개역개정 본으로 ‘그 대신’이라고 번역되었지만, 개역한글 본으로는 ‘치우쳐’로 번역되었습니다.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여기서 ‘치우쳐’로 기록된 헬라어 원문은 ‘기대다’, ‘미끄러지다’, ‘집어 던지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오벧에돔에게 여호와의 법궤가 누가 던진 것처럼 미끄러져 갔고, 오벧에돔이 법궤를 붙잡았음에도 웃사와 같은 진노가 임하지 않자, 다윗이 그대로 법궤를 맡긴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법궤를 옮겨간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고, 그 소문을 들은 다윗이 주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말씀의 식양대로 법궤를 다시 옮겨오게 됩니다. 이방인이었던 오벧에돔에게 일어난 본문의 사건은 ‘한 새 사람’, 곧 이방 교회와 이스라엘 교회가 십자가로 하나 되는 종국적 회복을 의미합니다. “법조문으로된계명의율법을폐하셨으니이는이둘로자기안에서한새 사람을지어화평하게하시고또십자가로이둘을한몸으로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5-16).” 이방인의 집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는 일이 대추수의 때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십자가로 하나 되는 연합을 이루며 다윗의 장막에 임하였던 놀라운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성전과 성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삶을 ‘성전’과 ‘성산’으로 표현합니다. 성전은 예배와 기도의 중심 센터로서, 주님을 위한 찬양과 기도가 사수되고 그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반면 성산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는 작은 교회들로서, 가정과 일터, 부르심의 자리를 말합니다. 다 함께 모이는 성전으로도, 흩어져서 존재하는 성산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운반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주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듣고 훈련 받은 성도들이 각자의 성산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며 종국적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이 소중한 사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오벧에돔에게 미끄러졌던 법궤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신 임재를 사수하는 이 일을 믿음으로 함께 이루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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