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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또 하나의 가족(마12:46-50)

이 땅에서 경험하는 영적 가족, 교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리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풍성함을 이 땅에서 무엇으로 경험할 수있을까요?주님은복음을위해형제나자매나부모나전토를버린자가 현세에 백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어머니와자식과전토를백배나받되박해를겸하여받고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백배로 주어지는 부모와 자식, 바로 교회입니다. 복음을 따르는 자에게, 주님은 교회를 약속하셨습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를 버렸을지라도 이 땅에서 교회를통해새로운영적가족과유업을받을것입니다.“누가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콩자루 교회와 메주 교회 이땅의교회들중,‘콩자루교회’가있습니다.한자루안에콩들을 담아놓듯이, 한 교회 안에 성도들이 각각 생콩알들로 존재합니다. 이런 콩자루 교회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됩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이듯이, 교회에 모여서는 각자 예배를 드리고는 아무 관계성 없이 흩어집니다. 콩자루 교회에서는 성숙과 성장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때로는설교에감동받기도하고찬양을드리며눈물을흘릴때도있지만, 영적 성숙의 자리로 나아가기 보다는 순간적인 위로에 만족하고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신앙 생활을 유지합니다. 반면, ‘메주 교회’가 있습니다. 콩들이 한데 섞여 삶아져서 ‘메주’란 새로운 형질과 형태로 변화된 교회입니다. 성경의 교회는, 바로 ‘메주 교회’였습니다. 1세기 성도들은 서로 다른 직업과 신분과 환경과 상황에도 기꺼이 하나 되기를 택했습니다. 익명성뒤에숨지않고,나를드러내고동시에서로를품는일은결코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교회를 이루는 이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어 성장해 가는 여정입니다. 1세기 성도들은 두 세명에서 많게는 수 십명이 때로는 광야에서, 때로는 각 처소에서 모여 마지막 날을 함께 살아내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너희의 복이지금어디있느냐내가너희에게증언하노니너희가할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갈4:15).”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우리는 서로 의탁하고 서로를 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오직 이 사랑에 있습니다. 관계의 아픔 속에서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진실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풍성함, 영적 가족 그리스도인의 삶의 풍성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에게 영적 아비와 어미가 있습니까? 영적 자녀가 있습니까? 영적 동역자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적 가족을 누리며 풍성한 삶을 경험할수있습니다.영적아비는나를위해목숨도내어줄수있는 목자입니다. 영적 자녀는 내가 죽어줄 수 있는 복음안에서의 자녀입니다. 동역자는 육신의 아내처럼 신앙의 여정을 함께 갈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풍성함은 이 땅에서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영적 가족, 교회를 누리고 경험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어떻게 일곱 귀신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입니까? 교회로, 원수의 거짓을 드러내고 사랑으로 치유받을 것입니다. 한 알의 콩이 아닌, 메주처럼 새로운 형질로 다시 태어난 공동체가 되어 하나 됨의 능력과 기쁨으로 세상을 이기길 축복합니다. 왕위를 다투지 않은 다윗과 요나단처럼, 고부사이였으나 서로를 책임지려했던 룻과 나오미처럼, 영적 유업과 사명을 넘겨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사랑으로 품고 하나되는 교회가 됩시다. 교회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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