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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됨 (엡 1:3-5)


신앙의 세 가지 목적

하나님은 우리를 왜 창조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은 이 심오한 주제에 대해,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함으로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른 신앙의 단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 십년 동안 ‘구원’의 문제에 매여 불안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역’이 불안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신앙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그 첫 번째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절대적인 신앙의 시작점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닙니다. 누구도 학습이나 논증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신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의 중심이 ‘구원 받았는가’에만 매여 있다면, 이런 성도들은 사실 복음이 분명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가, 아니면 영적 장애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시작되었다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나무에 연결된 가지는 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꾸짖음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두 번째, 사명과 일이 신앙의 목적인 성도들이 있습니다. 헌신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입니다. 사명이 목적인 사람은, 사명에 따라오는 ‘상’에 목적을 둔 것입니다. 기독교에 보상 신앙이 없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음을 앞두고,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를 위해 면류관을 준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신앙이 ‘상’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평생 싸워온 삶의 결과로서 주님이 주실 면류관을 선언한 것입니다. 성경은 일이 목적인 자들에 대해, 그들이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될 때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하는 단계, 영광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의 일곱 단계

신앙의 단계를 좀 더 세분화하여, 일곱 단계로 보기도 합니다. 첫 단계는 토기장이와 진흙 관계의 단계입니다. 진흙으로 무엇을 만들지에 대해, 그 결정을 진흙이 내릴 수 있을까요? 진흙의 용도와 쓰임새는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주권적 관계, 주권적 구원의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세 번째는 주인과 청지기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한계는 ‘일’이 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공동체의 인정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 신앙 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아버지와 품 안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들’로서 경험하기 시작한 자들입니다. 사명이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을 신앙의 중심에 둡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상속자인 아버지와 피상속자인 자녀로서의 관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바라보며 섬깁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방식만을 주장하거나 그렇기에 타인 혹은 타공동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을 질시하는 연약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더 성장하면, 여섯 번째 단계인 친구의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열망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자 하며, 주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하여 사역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바로 신랑과 신부의 관계, 연합의 단계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주님이 있는, 그리하여 마음이 하나되는 연합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영광이 목적인 자들, 하나님의 갈망을 마음에 품고 이루어 내드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아들들이 된 우리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단순한 물질의 복입니다. 더 깊게는 심령의 복이며, 더 높은 차원으로는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세 가지 복을 모두 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가 이 모든 복을 누리도록 완전한 계획을 창세전에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사, 우리의 죄 값으로 피 흘리신 구속사의 사건은 창세전에 그 기쁘신 뜻대로 결정된 섭리인 것입니다. 창세전에 시작된 온전한 계획,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빠 아버지 되십니다. 사랑으로 안아 주시고 품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용납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자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커버링, 큰 지붕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크고 작은 잘잘못들을 훈육하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아버지는 정말 결정적인 순간, 자녀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든든한 지붕이 되어, 넓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어주어야 합니다. 이 관계를 통해 자녀들이 한없는 사랑과 용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거나 부리기 위해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영광을 나누기 위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자녀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하신 기도를 기억합시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1-22).” 우리는 아버지와 영광을 누리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코이노니아를 위해 예정되었습니다. 아들의 권세와 아들에게 주시는 모든 복을 소유합시다. 영광 안에 성숙하고 영광을 위해 성장하는 아들들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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