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세상을 개혁하는 방식 (창 41:38-43)


교회가 세상을 개혁하는 방식

시대가 전환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기점의 요인들이 있습니다.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 무력입니다. 혁명과 전쟁을 통해, 새로운 시대와 세상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는 교육입니다. 지식의 전달과 학습은 완만하지만 확연한 변화로 또 다른 세상을 열어왔습니다. 세 번째로, 발견과 발명이 있습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전기가 발명되고, 페니실린을 찾아내는 등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통해 역사는 시대의 전환점을 찍어왔습니다. 그 중 무력에 의한 변화는 가장 극적이면서도 멀지 않게 느껴집니다. 기득권층을 향해 도전하는, ‘아래로부터 위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입니다. 아래로부터 위를 향하는 혁명은 간혹 성공하기도 했었지만, 그 성공조차도 피흘림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역사속에서 참혹한 결말을 맺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이런 계급 사회에서 가장 하층민인 노예의 자리에서 당대 최고 왕국인 애굽을 변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형제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수감되었던 세월을 지나,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바꾸고 민족들을 구원한 방법은 무력이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 주를 경외하는 삶의 중심과 태도가 그의 유일한 무기이자 능력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역사의 주관자께 붙들린 자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의 능력으로

세상을 섬기는 영역과 자리가 각자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곳, 어떤 위치이든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삶의 태도입니다. 요셉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형제가 파 놓은 구덩이에 떨어져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이방 땅에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을 때에도, 그는 주 여호와를 경외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말하는 요셉의 삶의 중심, 경외함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그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보고 있음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다른 누군가 나를 보든 보지 않든, 내 모든 행위와 마음의 중심까지 아시는 하나님 그 분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두신 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돈 때문에, 관계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함으로 가정과 일터를 지키고 계십니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즉시로 거절하며 다른 인간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보디발이 두렵거나, 보디발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형제들을 용서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가족의 위장된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삶을 맡긴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들을 이루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의 열매로

노예로 팔려간 이방인 요셉의 삶은 애굽 권력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3).” 그들에게 요셉은 신이 함께 하는 사람, 여호와가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은 종종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의 삶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친구는 참 복이 있어. 이 친구가 있는 곳은 복을 받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여호와가 지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사는 자의 삶에는 주님이 주시는 형통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형통의 열매를 회복하길 축복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한 분명한 명분과 목적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소원을 이루어드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믿음으로 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능력을 받읍시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우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세상이 보게 합시다. 경건의 삶을 사는 자들을 주님은 인정해주시고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초자연적인 믿음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노예였고, 죄수였던 한 사람이 애굽 왕을 감동시키고 그를 섬기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초자연적인 믿음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깊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친밀감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던 막내 아들에서 노예로 전락한 상황에서 도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억울한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요셉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초자연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믿음을 지키며 주님안에 거하였기에, 요셉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술 관원의 꿈을 해몽하여 주고 바로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와 소통하는 사람. 하늘의 통치자의 신령한 능력이 임한 사람.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 받는 인생을 넘어, 주님의 지혜를 대언하는 자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어둠이 잠식해 올 때, 세상 한 가운데서 빛을 발하는 거룩한 능력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소망없어 보이는 이 시대에 길을 보여주는 하늘에 속한 자들, 하늘을 움직이는 교회로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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