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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영계와 자연계.. 그는 하나님 (마 8:18-27)


죽은 자 –세상에 속한 자

치유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 주변에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을 피해 건너편으로 가려는 예수님께 한 서기관이 나와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서기관에 이어, 제자 중 한 사람이 주님께 나와 또 이야기합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는 제자에게 주님은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두 상황 속 주님의 대답은 많은 무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에 속한 자들, 죽은 자들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서기관에게 다소 생뚱맞게 들리는 대답을 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서기관의 마음 속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나름 학식이 있는 자신이 보기에도 예수님은 지혜로우시고 말씀의 깊이가 있었으며, 시대 저항적인 행적을 보이시면서 기적을 드러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성공의 길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 땅에서의 성공과 상관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땅 위 세상이 서로 다른 세계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떠나려했던 제자에게 ‘영적으로 죽은 자’가 ‘육적으로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고 하십니다. 물질 세계에 매여 있는 자는 산 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공을 위한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체크하고 합리성을 따져가며 주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나의 신앙 생활이 막연한 기대나 신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길 축복합니다.


믿음이 작은 자

본문에 등장하는 두 번째 그룹이 있습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했지만 아직 믿음이 작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한 서기관과 제자에게 세상에 매여 있는 ‘죽은 자’를 의미하는 말씀을 하신 후, 곧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 때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릅니다. 제자들은 이 난리 속에서도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깨우며 말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즉시로 풍랑이 멈추었고 사람들은 놀라서 말합니다.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주님은 바다 한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며 당신을 깨우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원문의 의미로 보면, 믿음의 작음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거듭났으나, 주께서 만왕의 왕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관자, 통치자이심을 진정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여호수아서 24장에서, 여호수아는 눈에 보이는 이방 우상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으로 따르고 섬길 신을 택하라고 일갈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종종 믿음이 환경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 때면 주님을 따르는 삶이 감사하지만, 내 계획이 막히고 때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놓일 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믿음이 작은 자,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이 아닌,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이르게 되길 축복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살아내는 통합된 믿음

지금 우리는 육체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현실의 여러 역학 구도와 합리적 판단에 의거해야할 상황 속에서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를 보이는 세계와 연결하여 대처하는 초자연적 믿음, 통합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린 아이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순수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탁된 믿음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되어 있습니까? 합리적 계산과 판단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상식을 넘어서는 큰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길 축원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기대할 수 없는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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