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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정욕을 제하라

마 4: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받으신 두 번째 시험 -안목의 정욕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육신의 정욕을 이기신 예수님은 곧 이어 두 번째 시험을 받게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씀을 인용하며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원문의 의미를 볼 때, 예수님께서 서신 장소가 성전 남쪽의 꼭대기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곳은 성벽 아래로 깊은 골짜기가 이어지며 높은 낭떠러지 같은 지형처럼 만들어진 곳이었습니다. 마귀는 위험천만한 성벽 꼭대기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예수님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심지어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미혹한 것입니다. 공포심을 일으키는 실제적 상황과 그로 인한 압박감 속에서 원수와 싸워야 하는 이 두 번째 시험이, 바로 ‘안목의 정욕’에 대한 도전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 음란이나 두려움 같은 죄성을 자극시켜서, ‘진리’보다는 ‘일차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함으로 죄에 열리게 합니다. 눈으로 인지되는 상황이 지정의(知情意)라는 내면의 체계에서 죄성을 증폭시키고, 죄를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 속 안목의 정욕

마태복음 5장은 육신의 본능을 자극하여 죄의 문을 여는 ‘눈’에 대해 말합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또한 6장에서는 ‘눈’이 어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육신의 정욕이 창세기 3장 6절의 ‘먹음직 한 것’에 해당된다면, 안목의 정욕은 ‘보암직한 것’과 연결됩니다. 육신의 정욕이 인간이 가진 근본적 욕구에 기반한다면,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 내면에 남겨진 흔적들이 어두운 생각과 감정으로 연결되면서 더 복잡하고 광범위한 죄의 실행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나는 지금 내 안에 무엇을 넣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생각과 감정에 자리를 잡았다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결국 인생의 선택들 속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눈을 통해 본 것들이 영혼에 흔적을 남기며 내면에 쌓이게 될 때, 나도 알지 못한 채 진리는 가려지고 죄의 문들이 계속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라

안목의 정욕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육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항상 기억하고 ‘영의 눈’으로 보기를 결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에서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합니다. 어둠속에서 빛을 볼 수 있는 눈,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원수는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지식의 깊은 곳에 어둠을 심어놓기 위한 악한 상징과 이미지들을 세상 곳곳에 뿌리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뿐 아니라 각종 광고와 책과 건축물 속에도 죄를 자극하는 어둠의 형상과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쏟아지는 혼란속에서, 우리는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며 공포심을 자극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마귀를 꾸짖고 대적하길 바랍니다. 눈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더라도, 예수님처럼 믿음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봅시다. 두려움으로 압박하며 잘못된 말씀으로 미혹하는 마귀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 집중하길 축복합니다. 원수가 눈을 통해 온갖 더러운 것들을 집어넣어 생각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혼란해지려 할 때, 육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뜬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눈의 언약을 세우라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기서 31장의 욥의 고백처럼, 안목의 정욕과 싸워 이기기 위해 우리는 또한 ‘눈의 언약’을 세워야 합니다. 눈이 정결케 보호되도록 볼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스스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때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면을 더럽히는 것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즉시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들어온 죄의 모습을 은근히 떠올리고 되새기며 생각과 마음에 남기지 않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둠의 영향력을 거절하고 끊어내야 합니다. 이 약속은 꼭 음란의 죄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눈에 대해서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으려는 모든 종류의 안목의 정욕과 싸우기로 결단합시다. 눈으로 보아온 많은 것들, 특별히 마귀가 의도적으로 만든 문화와 교육 컨텐츠들이 이미 내면 안에 심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눈의 언약을 세우고, 수시로 기도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읽는 것이 안목의 정욕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통해 내 영이 하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속 장면들이 내 안에 각인됩니다. 진리가 심령에 새겨지며 생각과 마음을 지키게 됩니다. 말씀으로 눈을 연단합시다. 눈을 감으면 떠올랐던 어둠의 잔상들은 사라지고, 내 안에 새겨진 말씀의 역사로 하나님을 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진리의 기준을 세우고 분별하라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진리의 기준을 세우고 영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눈에 안약을 바르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어둠과 빛의 일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안약을 사서 발라, 내가 벌거벗겨진 수치의 상황속에 있는지, 흰 옷을 입고 진리의 길에 서 있는지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분별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주님의 생명이 들어온 자들은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임하신 성령으로 인해 빛과 어둠의 일을 구분하여 느끼게 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어둠의 일에 대한 뭔지 모를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더 성장하게 되면 한 영혼과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영의 활동과 기능을 분별하게 됩니다. 어떤 모습이든, 분별력이 생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말씀의 기준은 제쳐두고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무당이 점치는 바와 다를 것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향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을 도박하듯 도전하지 않길 바랍니다. 갈지, 멈출지, 할지, 말지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듯 고민하지 말고, 믿음의 눈과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영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견고히 세워지고 그로 인해 영의 눈이 밝아질 때,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생명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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