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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의 의미

마태복음 1:2~3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예수님의 계보 속 다말의 의미 -첫째,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

다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한 글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따르는 선민으로서 율법과 율법적 문화에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는 믿음의 조상으로 다말을 올리며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의 족보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의 행전이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여정은 인간적인 의로움에 있지 않습니다. 율법적 행위를 통해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유업을 취하는 조건은 오직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온전하지 않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의 의로움이 아닌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신약의 바울은 어떻습니까?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 쳤던 바울에게도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이 역사하지 않는 율법은 죄를 숨기게 할 뿐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생명의 성령의 법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깊어지는 복음을 날마다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계보 속 다말의 의미 –둘째, 사명을 함께 일으키는 자

다말은 또한 ‘사명과 사명을 잇는 다리를 만드는 자’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뿐 아니라, 사명을 상실한 자들이 함께 서도록 일으키는 것입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한 다말의 저돌적인 행동은 여호와의 언약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 유업을 취하고 이루어야 할 숙명적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자녀에 대한 단순한 감정 때문이었다면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스라엘 여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잉태하고 출산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가문에 시집을 가며 이 사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고도 집요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다말의 행동은, 언약의 삶을 떠나 이방 땅에 유하던 유다도 깨웠습니다. 유다는 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긴 이후 그들에게서 떠나 이방인들과 거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마음에는 자조적인 참소와 상실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유다에게, 다말의 행동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약속을 받은 자손, 유다여! 이 곳에서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사명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며 살아가는 자를 통해, 사명을 잃어버린 자들이 함께 회복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옳은 자, 사명의 삶을 사수하며 사명의 삶을 일깨우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예수님의 계보 속 다말의 의미 –셋째, 진리를 기준으로 세우는 자

다말의 세 번째 의미는 ‘기준을 세우는 자’입니다. 다말이라는 이름은 종려나무를 뜻하는 ‘타마르’란 단어에서 비롯되었는데, ‘기둥’, ‘바로 세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말은 그 이름처럼, 진리를 세우는 삶을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율법이란 도구로 자신을 의로운 자라 내세우려 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밝히듯,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우리가 세워 놓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진리를 따라 살기를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소리들을 생각해 봅시다. 감성을 자극하여 마음을 움직여서, 진리를 지켜내는 삶이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적대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동성애와 젠더 이슈, 북한에 대한 시선, 이슬람 문화에 대해 성경을 기준으로 바라 볼 수 있길 축복합니다. 인간적인 감정들과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가 아닌,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과 집단이 만들어 낸 감정과 이성에 매이지 말고, 진리를 사수하며 성령과 동행하라!” 삶의 중심에 진리가 기준 되어 세워지길 기도합시다.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언제나 사람이 아닌 주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