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노래와 새 노래

2019-9-01

 

 

에배소서 5:19~21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제도적 예배와 확장된 예배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 우리의 삶에 예배가 풀어지고 확장되고 있습니까?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이 자리에서, 예배를 누리고 계십니까? 에베소서 5장 본문은 성령충만의 방법이자 결과로,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자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능력입니다. 교회는 다 함께 모여, 또한 각 가정과 일터로 흩어져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함께 모이나 또한 흩어지는 예배. 이는 신약에서 말하는 예배의 두 가지 개념입니다. 먼저는 좁은 의미의 예배입니다. 이는 오늘 주일예배처럼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약속된 교회의 모임으로 드리는 제도적 예배입니다. 제도적 예배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요한복음 4장의 예배와 연결됩니다. 주님은 예배의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를 것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상에 치우친 사마리아 땅의 예배와 율법에 치우친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예배의 중심을 바로 잡아 주시며, 종교적이고 제도적인 의미로의 예배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반면, 넓은 의미의 예배가 있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로 이어지는 확장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은 세상과 구별되어 주님께 드려진 산 제물, 예배자로 삶을 살아갈 것을 말합니다. 예배의 두 개념은 Worship과 Service란 두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경배를 요구하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경배(Worship)가 앞서 말한 좁은 의미의 예배, 즉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모여 드리는 제도적 예배에 가깝다면 섬김(Service)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 예배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할 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의 자리에서도 주님을 예배함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주어진 일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처럼 주일예배나 금요철야 같이 약속된 날 예배당에 함께 모일 때도, 로마서 12장처럼 제도적 예배가 끝난 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도, 언제나 우리의 예배가 주님안에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 예배, 제도적 예배로 함께 모여 예배할 뿐 아니라,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논문을 쓰고 자료들을 정리하는 모든 삶의 현장이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예배를 누릴 수 있는 성도, 예배로 돌파할 줄 아는 성도, 예배로 임재를 나르는 성도로 섭시다.

 

서로 화답하는 코이노니아의 예배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세상과 구별된 빛의 자녀들로서 오직 성령 충만할것을 당부한 바울은 이어서 그 결과인 예배의 다섯 가지 형태를 말합니다. 바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감사와 피차 복종함입니다. 가장 먼저 언급된 ‘시’는 헬라어 원문으로 ‘줄을 타다’, ‘소리를 내다’라는 의미로, 악기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시편에서 악기 소리에 맞추어 불려진 노래가 ‘시’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위해 쓴 글과 말들을 낭송하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오늘날 문학 장르 중 시가 오히려 찬송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는 ‘신령한 노래’입니다. 이는 ‘프뉴마’, 즉 ‘영’적 요소가 강조된 노래로, 방언 기도와 같은 ‘영의 노래’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영적으로 풀어지고 선포되는 다양한 예배의 모습들을 골로새서 3장과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언급하였는데, 특별히 방언 기도에 대해 말하며 영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 영의 찬송과 마음의 찬송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이처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드려지는 예배에서 또한 주목할 것은 서로 화답함입니다. 에베소서 본문에서 바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라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 누군가는 시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누군가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선포하며, 누군가는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분명한 곡조에 따라 노래하는 소리, 주님의 아름다움과 위대하심을 외치고 선포하는 소리, 영의 노래로 주님을 높이는 소리, 그리고 그 영적 노래를 통역하여 풀어내는 소리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서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1세기 교회의 예배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수백명이 모일수 있는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적게는 두세사람부터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찬송시와 계시의 말씀과 예언의 노래와 영의 노래로 코이노니아 예배가 이루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예배가 우리에게도 풀어지길 소원합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고린도 교회처럼, 성령님의 운행하심에 온전히 이끌려가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여 마음이 하나되고 영이 풍성하게 되는 예배가 열리길 바랍니다. 

 

서로 화답하는 코이노니아의 예배 - 새노래

마지막으로 종종 ‘신령한 노래’와 헷갈리는 ‘새노래’에 대해 나눕니다. 신령한 노래가 영적인 노래라면 새노래는 이전과 다른 노래로, 요한계시록 5장 본문으로 새노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새노래는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린 양, 즉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입니다. 두 번째는 어린 양이 완성하신 의, 모든 저주를 끊어낸 십자가 구속의 선포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성장과 새로운 계시로의 노래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며 넓고 깊어진 만큼 새롭게 불려지는 노래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어렸을 때는 하나님을 나를 지켜주는 분, 내가 기도하면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 정도로 경험합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우리는 역사를 운행하시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점차 알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더욱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깊이와 넓이가 나날이 확장되어 이전과 다른 새노래로 주님을 노래하길 축복합니다. 10년 전의 하나님, 5년 전의 하나님이 아닌, 오늘 또 새롭게 만난 하나님을 노래합시다.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자비와 아름다움이 이 교회가 부를 새노래 되기를, 하나님을 아는 깊이와 넓이의 새로운 노래가 계속해서 울려퍼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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