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질(電解質)

2019-6-30

 

요한복음 16:7~1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다른 세대가 되어버린 다음 세대
우리는 이번 한주동안 아시아 기도의 집 리더십 서밋을 섬기며 13여개국에서 모인 기도의 집 사역자들과 함께 다가올 부흥을 기도하며 코이노니아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에 이 서밋을 통해 주께서 주신 메시지가 ‘온 아시아가 한 가족이다’였다면, 올해 우리에게 던져진 키워드는 ‘다음 세대’였습니다. 다음 세대! 익숙하면서도 지금 이 시대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현실적 고민이자 과제입니다. 사사기 2장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등장했음을 말합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을 마침내 출애굽 시켜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영도자,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모습은 비단 본문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아버지의 믿음과 그 유업이 자녀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일들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그러했고, 사무엘의 아들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듭되는 과제입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일들을 이 나라에서 보고 있습니다.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잃어버린 다음 세대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다음세대 안에서 위대한 믿음의 전수자들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갑절로 다음세대에게 부어져야 이 땅에 새로운 부흥과 소망이 임할 것입니다. 


첫째, 분명한 본질을 사수해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가치의 반대편에서, 교회는 시대적 고민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뜨거운 주제인 ‘4차 산업혁명’전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있었듯이, 교회는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인본주의와 싸워 왔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흐름 속에서 교회의 결론은 항상 ‘본질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결론은 나왔으나, 본질로 돌아갔다는 결과가 모호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본질’을 말하면서, 막상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어떠한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지켜질 수 있던 것은 진리가 정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진리가 우리 안에 분명하지 않다면, 우리가 회복하기 원하는 본질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넘어서 사람들의 시대적 관심사에 따른 이야기들로 주목받고자 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주제에 맞추어, 많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는 의견에 따라, 본질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 침례교단의 교회로서, 우리는 특별히 이런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카톨릭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의 일생을 쥐고 흔들기 위해 잘못된 종교적 관행들을 만들었을 때, 침례교도들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위해 기꺼이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돌이켜 취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모른면서, 본질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 기준조차 다르게 말하는 한국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이제 회색 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소리를 대언해야 합니다. ‘넓은 아량’이 진리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세상에 미움받는다 해도, 본질이 본질이 되기 위해 교회가 진리를 외쳐야 할 때입니다. 

 

둘째, 본질이 역사하게 전하는 전해질을 회복해야 한다
본질이 역사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전해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으나, 저는 한 때 심각한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척추와 골반쪽이 70대 노인의 뼈 상태였습니다. 당시 담당 의사가 저에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뼈에 좋은 칼슘이 많이 들어있다는 음식을 열심히 먹어도, 칼슘 성분을 뼈로 전달해주는 비타민 D가 없으면 배설물로 배출될 뿐이란 것입니다. 진리를 알아도 전해질이 없다면 나의 것으로 소화되지 못하여 생명으로 역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삶에 실제적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이 불변의 진리가 한 세대에게 생명으로, 부흥으로 전달되기 위해서 전해질이란 중간 매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이 말씀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삶에 있음을 말합니다. 기도와 금식과 예배는 가장 중요한 영적 전해질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스스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예배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성령님께 붙들릴 때, 주님의 생명이 충만히 흘러갑니다. 오늘, 내 삶에 본질이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봅시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듣는 듯하나 삶이 그 말씀에 따라 움직여지지 못한다면, 우리가 섭취한 칼슘이 뼈로 전달되지 못하고 배설물이 되어버린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전통과 종교를 생명과 진리로 착각하지 않길 축원합니다. 생명과 진리가 약해질 때, 우리의 믿음은 전통과 종교로 전락해 버립니다. 십자가를 살아낼 능력이 우리 안에 없다면, 진리가 우리의 영안에서부터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면, 기도와 예배와 금식의 삶을 통해 본질이 우리안에 역사하게 합시다.

 

세상속에 생명을 나르는 전해질 된 교회

본질이 회복되어 내 속사람을 강건케 하고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길 축원합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부터 흘러나가는 생기가 사방으로 전달되길 기도합시다.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을 전하기 위해 우리안에 생명이 생명되게 하는 전해질적 요소가 삶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한 교회가 바로, 전해질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기도와 예배와 금식의 삶으로 생명이 충만하여 질 때, 우리의 노래와 춤과 그림과 글과 전하는 말과 모든 선포가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전해질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에 기도와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왜 교회는 본질을 사수하며 싸워야 하는가? 우리가 바로, 오늘도 이 땅을 침노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해질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다음세대에게 새로운 전해질로 복음을 들고 다가갑시다. 그리고 이 세대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또 다른 전해질이 되도록 가르칩시다.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 다음세대를 살리는 교회가 서야 할 때입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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