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과 영접의 원리
에배소서 4:25~3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내 안의 빛과 어둠을 움직이는 초청과 영접의 원리
오늘, 영적 삶을 살고 있으십니까? 이는 단순히 지식이나 경험, 육신의 반사적 작용이 아닌 영적 체험이나 은사에만 집중하는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삶이란 모든 영적 기능과 현상의 주체이자 실제가 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할수록, 내면의 깊은 곳까지 빛으로 채워집니다. 성령님을 의지할 때, 날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과의 더 친밀한 동행이 이루어지기 위해 두 가지의 상황을 대조하여 말합니다. 먼저는 원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27절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수들을 향해 대적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원수가 우리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합니다. 반면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며 성령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그의 일을 행하시는 것을 불편해 하지 말며,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방해하거나 막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둠의 영이 우리에게 접근하려드는 환경을 차단하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의 활동이 더 확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를 ‘초청과 영접의 원리’라 말할 것입니다. 자연계처럼 영적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들이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영적 실체들이 우리 내면에 들어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문이 열려야 합니다. 이처럼 문을 여는 단계를 ‘초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초청으로 인하여 마침내 영적 실체가 삶에 영향력과 주도권을 갖게 되는 과정을 ‘영접’이라 말합니다.
어둠의 영을 초청하는 환경적 요인 –첫째, 재정의 문제
먼저는 ‘초청’입니다. 초청은 영적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파리들이 좋아하는 환경에선 파리가 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과 직장, 여러 관계의 상황속에서 어둠의 영들이 계속적으로 활동한다면, 어둠을 불러들이고 어둠의 영들에게 힘을 주는 영적 환경을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은 다음의 두 가지 결정적 요소들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는 ‘맘몬’, 즉 돈의 문제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한 바울은 28절에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도덕적 주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먹고 사는 일상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일하는 차원이 달라짐을 뜻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돈은 숭배의 대상에 놓여 있습니다. 돈 때문에 형제들이 싸우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도 멀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물질은 통로이자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재정의 풍성함은 은사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의 재정을 운반하는 통로가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돈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재정의 문제로 훈련을 받고 있다면, 반드시 통과하길 축원합니다. 돈이 삶을 주장하도록 틈을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돈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분명히 믿고, 돈을 다스리는 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어둠의 영을 초청하는 환경적 요인 –둘째, 말의 문제
영적 환경을 조성하는 결정적 요소에 또한 ‘말’이 있습니다. 말은 영적 존재들에게 문을 열고 닫습니다. 이는 선포되는 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내면으로 읊조리거나 습관적으로 내뱉거나 중얼거리는 말도 어둠의 영이 꼬이게 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친구들의 별명을 아주 잘 지어주곤 했습니다. 문제는 당사자가 괴로워할만큼 그의 약점을 잘 드러내는 ‘못된 별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저의 연약함을 성령님께서 완전히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지체들의 연약함이 아닌, 그들의 존귀함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때로 연약하고 부족해보이는 친구들이라도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사랑안에서 인내하며 기쁨으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지체 안에 있는 원석, 조금만 다듬으면 될 보석이 보이기에, 고되지 않게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제 안에서 일으키신 새로운 변화입니다. 제 눈이 바뀌었고, 그러자 말이 바뀌었고, 영적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말에는 영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을 영적 존재들이 듣고 움직일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생명의 말, 승리의 말을 하길 축원합니다
영접
초청이 영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면, 영접은 보다 결정적인 영적 사건입니다. 이는 주변을 맴돌던 영적 존재가 우리 혼의 영역에 자리를 잡고 주도권을 갖게 됨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31절은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영적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독은 강한 독설, 노함은 살인적 분노, 분냄은 적대감, 떠드는 말은 주술적인 저주성 욕설, 비방은 영적 방해를 뜻하며 이 다섯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내면의 상태를 악의라고 합니다. 이 모두가 영적 상태를 뜻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주변을 맴돌던 어둠의 영에게 내면에 거할 자리를 내어주고 또 다른 인격으로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합니다. 어둠이 아닌 하나님의 영만을 영접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배함이 중요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노래하고 외치고 뛰며 적극적으로 주님께 나와 내 삶을 의탁하는 예배를 드리길 축원합니다.
가룟 유다의 초청과 영접의 교훈
유다는 돈을 사랑했습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을 때, 그는 도무지 이 예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돈을 사랑함이 그의 삶에 마귀를 불러들이는 환경을 엽니다. 그는 마귀의 소리에 마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너나 결정적인 영접은 유다가 예수임을 팔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에 마귀가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마귀에 속삭임이 들린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합시다. 어둠의 영이 꼬이는 영적 환경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환경으로 우리의 삶을 초청하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운행하시는 주님께서 또한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 곳에 공기 변화시시길 기도합니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