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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직임과 오중사역


에배소서 4:11~13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음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살아있는 교회 에베소서 4장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하나됨’입니다. 1~6절까지 택함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 하나 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를 말했다면, 이어지는 7~10절에서는 하나 됨이 무조건적인 평준화나 획일화가 아닌 각 사람의 유니크(개성)를 살린 유니티(연합)임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이처럼 각각이 지닌 찬란한 색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주님이 이루신 하나 됨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존재하기 위한 질서와 체계와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적 생명체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부르심 받은 우리의 은사와 사명은 교회 안에서 성장하며 교회로 이루어집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당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사람의 모임이 아닌 한 생명체로의 유기적 연결 안에서 어디에서든 교회로 존재하는 우리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건물에 갇혀버린 교회가 아니라 건물을 넘어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교회, 요한복음 2장에서 말씀하신 성령으로 세워지는 새 성전으로 교회가 서야 합니다.

오중 직임의 의미 – 첫째, 교회의 질서이자 각 사람의 분량 오늘 본문에는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임이 등장합니다. 이는 사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도’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주어졌던 직임입니다.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다시 ‘사도’라는 직임으로 서로에게 안수하는 일은 별반 특별한 의미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사도적 기능과 사도적 능력, 사도적 리더십의 성경적 회복이 교회를 교회답게 세울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문을 통해 보는 오중 직임에 대한 이해입니다. 오중 직임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1세기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꿈꾸는 우리가 취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첫째로, 오중 직임은 교회의 질서이자 각 사람의 분량을 의미합니다.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측정하시는 우리의 분량이 ‘믿음’과 ‘사랑’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리더십은 가문이나 외모나 학벌이나 재력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로 재듯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분량을 측정하시고 그 그릇만큼 당신의 일들을 맡기시며 세우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함이 많아 보이는 자라 할지라도 제자들 중 유일하게 물 위로 발을 내딛어 걸었던 베드로의 믿음처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믿음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랑의 분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아가파오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를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교회 안에는 이처럼 질서와 권위구조가 있습니다. 이를 통과한 자들이 제자입니다. 우리 교회의 첫 번째 권위 구조는 셀입니다. 때론 셀 목자가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권위를 존중하고 인내함으로 질서를 지킬 때 우리는 진정한 제자도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 몸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질서 구조가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분량이 날마다 커져서 좋은 리더십들이 더 많아지길 축원합니다.

오중 직임의 의미 – 둘째, 팀사역 두 번째로 오중 직임은 교회의 팀사역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독주로 운영되는 단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워주신 사도적 리더십이 있으나 또한 그를 도우며 동역하는 선지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의 직임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적 리더십에게 선지자적인 사람들은 마치 부부와 같은 보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적 리더들이 큰 그림을 보고 방향을 제시할 때 영적 예민함으로 옳고 그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보다 세밀한 시선으로 중요 포인트들을 찾아냅니다. 이런 과정에 있어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들이 함께 온 교회가 한 영 안에서 한 뜻으로 전진하도록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의 안디옥 교회를 봅시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 함께 모여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귀족, 왕족, 노예 출신이 모두 한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대로 주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각 사람이 지닌 색’이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며 ‘우리’로 모두의 부르심이 더욱 견고하게 됩니다.

오중 직임의 의미 – 셋째, 가족 또한 오중 직임은 교회가 가족임을 의미합니다. 사도가 어떠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사도는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하게 말을 잘하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아닙니다. 사도는 아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으로 씨름하며 낳은 자녀를 사랑 안에 인내로 키워내는 자들이 사도의 상징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사도적 리더들을 세우셔서 교회가 가족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우리가 항상 나누는 이 가치, ‘가족인 교회’를 더 풍성히 누리길 축원합니다.

오중 직임의 의미 – 넷째, 교회의 부르심, 직임의 은사 오중 직임은 또한 교회의 부르심, 직분과 직임을 의미합니다. 은사는 직임적 은사와 부차적 은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부차적 은사가 기능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직임적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과 연결된 은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저는 직임적 은사에 따라 사도적 리더십으로 이 몸의 담임목사와 또한 우리와 연결된 교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방언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 치유의 은사 등 기능적 은사들도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은 이런 절대적 은사와 기능적 은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되어 주님의 몸을 세우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종종 부르심과 연결되는 이런 직임과 기능적 은사들에 대해 잘못 이해한 나머지, 진정한 부르심의 자리가 아님에도 신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을 봅니다. 목자나 교사적 직임으로 부름받았으나, 교회의 본질적 구조와 오중 직임 사역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실수입니다. 부르심의 자리에서 세워지고 그 기름부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더 강건하게 자라납니다. 오중 직임과 오중 사역은 교회로 모인 우리들을 더욱 탁월하게 성장시키며 온 교회를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 사람이 더욱 아름답게 하나 됨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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