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파오


에베소서 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아가파오를 알아야 하는 이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 위해

우리의 본질적 존재,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아가파오 사랑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각 번역본에 따라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라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구한 아가파오 사랑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이며, 두나미스의 파괴력이 있는 권능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아가파오는 원수의 저주들을 끊어내며 기적을 발생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하늘 나라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바울은 이 위대한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길 구합니다. 뿌리를 내려야 함은 성도의 생명력에 대한 기도이며, 터가 굳어져야 함은 성도의 세워짐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가파오 사랑을 명확히 알고 경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가파오가 아닌 가짜 사랑에 뿌리 내릴 때, 참 생명의 공급이 끊어지며 삶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게 됩니다. 또한 흔들리는 터로 인해 주님의 집으로 견고히 지어지지 못합니다. 아가파오를 아는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생명을 작동시키며, 또한 성전으로 세워지는 축복입니다.

아가파오 사랑의 네가지 특징과 요소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며 어둠을 부수는 권능을 발휘하는 아가파오 사랑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요13:1을 봅시다. 예수님은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가파오 사랑은 ‘영원한 사랑’ 즉,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영적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아가파오는 ‘성령으로만 가능한 사랑’입니다. 타고난 성품의 온화함이나 학습된 교양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육적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 사랑은 거듭난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아가파오는 성령으로 영생을 받은 자들이 그 생명으로 나눌 수 있는 영원에 속한 사랑입니다. 또한 아가파오는 ‘주님과 연합된 자들만이 가능한 사랑’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만난 자들이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삶을 살아갑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이 내가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가파오 사랑은 ‘영광을 경험한 자들만이 가능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나누셨던 영광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되길 기도하십니다. 이 세상은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창조주가 나누셨던 그 영광. 사람이 도출해 낼 수 없는 이 영광을 아는 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아가파오를 바라고 구하며 경험하게 됩니다.

아가파오의 본질 –첫째, 하나님의 성품이자 존재방식

고린도전서 13장은 그 어떤 시보다 서정적이면서 또한 명확하게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게 13장을 1~8절과 9~13절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반부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후반부는 그 사랑의 본질이 어떠한지 말합니다. 주목할 점은, 사랑 없이도 구제나 자기 희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때로 아가파오 없이도 자기 의를 위해 헌신하거나, 죽기까지 희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여지는 모습으로만 참 사랑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가파오의 본질에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가파오는 하나님의 성품이자, 하나님의 존재 방식입니다. 사랑의 사도라 불리는 요한은 요한1서 4장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아가파오의 근원이자, 아가파오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의 대서사시 같은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렇게 맺어집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신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동기이자 성품이며 그 분 자체입니다.

아가파오의 본질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눔

아가파오의 두 번째 본질에 ‘영광을 나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아가파오 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영광으로 존재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육체를 입고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삼위일체로 나누셨던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길 원하십니다. 영광의 코이노니아 속에 아들들이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아가파오를 정리하는 세가지 표현

아가파오는 하나님의 성품이자 그의 존재 방식에 참여하여, 영원한 사랑안에서 영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를 세가지 표현으로 정리해 봅시다. 첫째, 아가파오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존재인 인간들에게 그의 영광을 나누고자 하시는 영원한 염원입니다. 둘째, 아가파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집착입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며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셋째, 아가파오는 구령의 열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주저하지 않고 내버리곤 했습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다.” 영혼을 향한 열정. 이것이 우리에게 부어진 아가파오의 작동입니다. 나이나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아가파오가 역사할 때 임하는 권위가 세워지길 축복합니다.

아가파오를 전하고 나눌 세가지 통로 –전도, 가정, 교회

그렇다면 어떻게 더 깊이 아가파오를 누리며 이를 전하고 나눌 수 있을까요? 첫째로, 복음을 전하길 바랍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품고 기도하며 씨름할 때,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게 됩니다. 복음 전도의 열정은 아가파오 없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아버지의 초월적인 사랑이 알아지고, 그 사랑이 나를 채우며 내게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가정이 교회가 될 때 아가파오가 회복됩니다. 이는 마냥 좋은 부모, 착한 자녀가 되어야 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주께서 다스리시는 교회로 서기 위해, 예수님께 굴복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가정의 대체공동체, 교회입니다. 교회안에서 하늘의 가족을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하여 씨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하나되기 위해 스스로를 찢을 때, 아가파오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연출할 수 없고 지어낼 수 없는 아가파오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그 사랑의 능력안에서 어둠을 깨뜨리며 담대히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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