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명1

2018-10-21

 

 

에베소서 3:1~13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하늘의 사명을 받은 자들

창세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아들들과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바울은 에베소서 1장과 2장에 걸쳐 교회가 얼마나 위대하고 비밀스럽게 시작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온전히 세워지는가를 말했습니다. 구별된 부르심을 위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함께 되어지고 지어지는 교회는, 세상은 깨닫지 못하는 비밀입니다. 이제 바울은 3장에 들어서며, ‘사명’을 말함으로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을 더 공고히 쌓고, 성도들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이미 ‘에클레시아’ 곧, 교회가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란 의미임을 나누었습니다. 교회의 터라 표현된 사도(APOSTLE)의 원어 뜻에도 ‘보내심을 받은 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은 교회로 모인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사명’은 사양하거나 양보하거나 고를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사명은 왕으로부터 부름받은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입니다. 취향에 맞춰 선택하거나, 내 뜻대로 바꾸거나, 때로 중도에 그만두어도 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명’으로 인해, 자신이 옥에 갇히게 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들로 결코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주님께서 택하여 맡기신 일, ‘사명’을 위해 때로 어려운 날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말아야 함을 몸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사명이 주어졌음을 기억합시다. 이는 포괄적인 하나님 나라의 대의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소명’보다 더 개인적인 부르심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소명도 주셨습니다. 소명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보편적인 부르심이라면, 사명은 주님께서 특별히 나에게 요구하시는 자리와 부르심입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기쁨으로 사명의 길에 섭시다. 부르심을 잊은 백성들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모르고 방자하게 삽니다. 사명을 알지 못하는 삶에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얼마나 경험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사명을 이루어가는 자를 격려하시며 승리할 권세를 부어주십니다.


사명을 이루어가는 요소 - 특권과 순종의 의무

사명을 이루어가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값 지불, 희생, 주님의 도우심과 이끄심, 은총은 우리로 사명을 감당케 합니다. 이 요소들의 반이 특권과 관련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명으로 부르시며, 또한 그 사명에 대한 특권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들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음을 기억합시다. 또, 주님은 모든 민족을 향해 나아가라는 명과 함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특권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도우심과 이끄심, 은총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또한 맡겨진 일을 탁월하게 행할 수 있게 하는 지혜와 하늘의 능력도 주십니다.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때로 우리의 위치를 높여주십니다.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만이 임하는 은총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특권은 우리로 사명을 감당케 합니다. 그러나 특권이 있기에 또한 우리에게는 책임과 의무라는 값 지불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원수들은 맹렬하게 사명의 길을 방해합니다. 우리의 육이 약하여, 지칠 때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길 축원합니다. 모든 연약함과 원수의 간계에도, 뒤돌아서지 말고 주님의 사명을 이루어 냅시다

대가지불 너머 주님의 특권이 있습니다. 순종의 능력으로 승리합시다. 주님의 일을 반드시 책임지고자 할 때, 그가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사명의 발견과 시작

우리는 어떻게 사명을 발견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사명이 시작되는 것일까요? 본문은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은혜의 경륜입니다. 이는 구원의 계획, 구속의 경영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DNA가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명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명이라는 옷은 Born again, 즉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때 입혀지게 됩니다. 거듭난 우리의 삶이 언제 죽어서 갈지 모르는 천당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경영의 섭리 안에 있길 축원합니다. 사명은 복음으로 우리가 태어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때, 함께 작동됩니다. 또한 우리는 ‘깨달음’으로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의 삶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알며, 또한 부르심의 소망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깨닫길 기도했습니다. 사명은 비밀입니다. 그렇기에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은 광야를 헤매듯 인생을 헤매이다 마칩니다.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물을 마시고, 만나를 먹으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함을 받는 광야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저주를 받지 않길 기도합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부르심의 자리로 기필코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를 돌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명으로인해 애굽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주님께 물읍시다. 바울은 계속해서, 사명을 ‘알게 되기를’ 구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발견하고 깨닫는 은혜위에 순종이 또한 있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야할 사명의 길을 보았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전쟁에 능하고 장대한 가나안 족속들이 길을 막고 있어도, 사명을 저버리지 않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취하라고 명령하시며 분깃까지 다 나누어 주었음에도, 그 땅에서 등을 돌린 자들을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한계를 보면서, 나의 약함을 탓하며, 세상의 방식대로 계산하고 예측하여 사명의 길에서 멈추고 돌아서는, 패역한 백성이 되지 맙시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운명적 부르심, 사명의 목적을 따라 전진하는 삶

Destiny와 Calling.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적 예언의 여정 속에서 부르심을 만나게 하십니다. 태초에 우리를 예정하신 하나님은 태중에서부터 그의 DNA와 의지를 우리 속에 넣으시고 인생들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Destiny입니다. 우리는 Destiny의 여정 중 Calling, 즉 부르심을 만날 때 인생의 섭리적 정점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밀하게 숨겨져 있던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의 이끄심 안에서 특별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때, 비로소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명히 보이지 않던, 그래서 때로는 막연했던 운명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마침내 부르심을 발견하길 축원합니다. 나의 부르심을 분명히 알고, 기꺼이 순종함으로 발을 뗄 때, 주님과의 더 깊은 동행이 시작됩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그의 부르심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향한 주님의 계획과 그가 감당할 사명을 분명히 알기에,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했던 열 두 사도와는 다르지만, 그를 택하여 부르신 주님의 뜻과 맡겨진 사명을 알기에, 바울은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Destiny 안에서 주님의 Calling과 만나는 은혜가 있길 축원합니다. 사명을 살아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그의 나라가 활짝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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