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와 선지자의 터1

2018-9-23

 

 

에베소서 2:19~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십자가와 성령의 여정>
주님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저를 택하셔서, 교회라는 위대한 꿈을 품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저의 호기심이자 열정이었고, 흔들리지 않는 일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중, 특별히 주께서 거듭하여 제 안에 든든히 서게 하신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먼저는 복음의 체험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진 후, 급격한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심이 마음에 가득했고, 교실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짝을 바꾸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한 날 윤리 교과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너 예수쟁이라며? 앞으로 기독교, 4대성인 예수 수업은 반마다 너가 맡아서 한 번 해봐라.” 그렇게 저에게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전할 기회가 열렸습니다. 주어진 수업 때마다 칠판에 십자가를 그리며 복음을 설명했고, 초청까지 했습니다. 저는 복음을 잘 알고 있었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진정 체험한 것은 전도사가 된 후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율법을 지키고 의롭게 살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해도, 내 안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의 본성들을 다스릴 수 없어 절망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롬1:17의 말씀으로 나의 노력과 힘으로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던 의에 도달하는 복음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곧이어, 주님은 또 한 번의 특별한 영적 도약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저는 사실, 몇 시간씩 방언으로 기도하면서도 성령님을 잘 몰랐습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들을 수차례 했지만, 바로 그러한 현상들에 성령님께서 갇혀 버리셨습니다. 그런 제게, 성령님께서 인격적으로 다가와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어떤 은사나 순간적인 느낌이나 체험이 아니라, 내 속에 좌정하사 동행하시는 주 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를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렇게 순간마다 주님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삶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주님은 새롭기만 한 당신의 또 다른 마음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들아, 사도행전의 교회들, 사도적 교회가 일어날 것이다.’

 

<‘사도적 교회’와 ‘신사도 개혁 교회’의 구별>
‘사도행전 속 사도적 교회.’ 저는 이것이 명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저로 계속 이 말을 내뱉게 하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동역자들과 청년들에게 사도적 교회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고, 설교나 강의를 접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년이 지난 2002년, 저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여는 ‘신사도적 개혁 교회 세미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주님이 말하셨던 사도적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란 기대감으로 집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천 명의 목회자들이 모였고, 세미나는 여러 면에서 새로웠습니다. 어떤 주제들은 동의가 되기도 했고, 어떤 주제들은 과연 그러한지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목사님께서 저를 ‘더 콜’이란 연합 기도 운동에 초청했습니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성회였습니다. 저는 ‘더 콜’의 기도 코디네이터를 맡게 되었고, 그 후 신사도 운동 그룹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중심으로 들어가서 보니, 귀한 가르침도 있었지만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도 세우기’ 였습니다. 그들이 ‘사도직’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경 속 사도의 모습과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기준도 불명확했고, 무엇보다 학위를 주듯 ‘사도직’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도들이 세워지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1세기 교회의 사도들은 끊임없이 높아지려 하고 부를 축적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으로 민족들을 섬기며 순교적 삶을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부의 이동’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께서 주신 축복들을 갈취하는 영적 공격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청빈한 삶을 가난의 저주라고 말하며 ‘부의 이동’이 축복이라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가 ‘부의 이동’이란 생각을 하지도 못할 때, 이미 기적과 같은 재정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어려움은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히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문제들은 저를 불편하게 했고, 저는 그 중심에서 다시 십자가와 산상수훈을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사도 운동에서 뒤돌아 나오게 되었고, 주님은 진정한 사도적 교회를 더 분명히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체험하게 하신 주님은, 사도적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 신사도 운동의 실체도 직접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저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기복 신앙, 종교적 신앙, 성공 지향 신앙에서 벗어나, 성경 속 사도적 교회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교회>
‘사도(Apostle)’란 말은 사실, 로마의 황제가 그의 권한을 넘겨주며 파송하는 대사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황제는 즉결처형권을 비롯한 그의 권한들을 사도에게 위임하고, 사도들이 황제와 같이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행하도록 허락합니다. 사도들은 황제가 보낸 땅으로 나아가, 그 곳을 개척하여 로마의 시스템을 세우고 다스립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할 때, 이는 교회가 보내심을 받은 존재임을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세로 하늘의 나라를 운반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도와 같은 자로 이 땅에 세우시고 파송하셨습니다. 그의 능력을 주시며, 그의 권세를 행하도록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가라’고 명하시며,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로 주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파송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부르심을 이루어가는 교회>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은 교회는 또한 교회가 부르심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나 사도들을 세울 수 없습니다. 사도라는 직임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왕이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는, 그를 파송한 왕의 부르심을 이루어 갈 사명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선포하시며 새로운 부르심을 명하십니다. 교회는 아무나, 자기 뜻대로 세우는 단체가 아닙니다. 주님은 부르심으로 교회를 세우시며, 교회로 부르심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우리를 보내시며 부르심을 감당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당당하게 손을 들어, 나의 가정과 일터를 축복합시다. 어둠을 내어 쫓고,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사도적 교회의 권능이 더 놀랍게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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