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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을 선포하라

레위기 25:8~12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땅에 대언할 생기, 희년

올 해를 시작하며 우리로 생기를 대언하라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의 외침을 더 분명한 선포가 되게 할 또 다른 키워드, ‘희년’을 주셨습니다. 사실, ‘쥬빌리(Jubilee)’는 한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성경 속 단어입니다. 그러나 한편 이 말을 불편해 하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가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조지스트들이나 사회주의적 단체들이 ‘Jubilee’를 잘못 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쥬빌리(Jubilee)’란 단어를 구속해야 합니다. ‘Jubilee’, 곧 ‘희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자유와 회복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25장을 봅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나팔을 불며 시작되는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 하는데, 이는 ‘나팔소리’, ‘가져오다’, ‘생기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하루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7년마다 1년씩 안식년을 갖는데, 그 안식년이 일곱 번째 오는 해, 즉 49번째 안식년이 올 때 그 다음 해인 50번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Jubilee에 행해야 하는 규례들을 따르는데, 이 때 노동을 금하는 안식과 토지의 반환, 종들의 속량 등이 행해집니다. 빚이 탕감되고, 묶인 자들이 자유케 되며, 이전의 것들이 새로워지는 은혜의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희년의 선포 –첫째, 안식

희년의 규례들 중, 첫 번째로 안식에 대해 나눕니다.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불며 희년이 선포되면, 이스라엘은 49번째 안식년에 이어 또 다시 노동을 하지 않는 안식의 일 년을 더 보내야 합니다. 사람의 계산과 판단으로 이러한 안식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2년을 연달아 땅을 경작하지 않을뿐더러 희년이 지나고 다음 해가 왔을 때 파종을 시작해도 그 농작물이 수확되기까지 일년에 가까운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3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소출 없이 버텨내야 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파종을 금하나 주리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시며 믿음의 삶을 도전하십니다. 스스로 위험을 맞이하는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진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의 의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예배하도록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밭을 일구고 수확물을 쌓아가다가 정체성을 잊어갑니다. 이방 민족의 농경 사회에서나 보는 우상의 문화와 풍속에 젖어들다가 부르심을 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식년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십니다. 잃어버렸던 예배와 잊었던 율법들을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은 예배의 해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해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취미생활입니까? 여행입니까? 잠입니까?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안식을 경험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의 영혼과 육이 새로워지는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안에서 우리는 부르심을 상기합니다. 소망을 회복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주를 예배함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안식, 우리의 마음과 의지와 육체가 새롭게 되는 주 안의 안식입니다.

희년의 선포 –둘째, 토지 무르기

희년의 날에 지켜야 할 의무에 또한 토지 무르기가 있습니다. 본문 23~34절까지가 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각 지파와 가문 별로 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레위지파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땅의 분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며 그들 중에서 땅을 빼앗기는 자가 생겨납니다. 본문은 그렇게 땅을 빼앗긴 가난한 자, 또는 스스로 땅을 무를 수 없는 자들이 어떻게 땅을 찾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느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들에게 희년을 약속하십니다. 앞서 말한 어떤 방법들로도 땅을 무를 수 없던 자들에게 희년이 되면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원래 분배하셨던 땅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고백이 있습니다. 모든 땅의 소유가 하나님께 있듯이, 우리의 모든 소유도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여호와 이십니다. 땅의 소유가 주께 있음을 고백하며 선포하는 이 위대한 희년의 행함을 토지 공개념으로 잘못 해석하고 차용하는 조지스트들은 명백한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성경은 결코 토지가 정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땅과 하늘의 주 되십니다. 희년의 대로 성회를 지나오는 이 한 주, 특별히 이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님의 것입니까?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가 여호와의 소유입니까? 그렇다면 희년에 잃었던 땅을 되찾아 주시는 여호와의 마음 안에서, 형통할 것을 믿으며 선포합시다. 기복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땅을 빼앗기고 기업을 무를 수 없게 된 자들에게 그들의 것을 되찾아 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희년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여호와가 땅을 나누셨던 처음으로 되돌아가듯 우리의 소유가 주께 속해 있음을 고백한다면, 희년의 축복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희년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마음이며, 성도가 회복할 은혜입니다.

희년의 선포 –셋째, 종의 속량

희년에 행하는 일, 세 번째로 종의 속량이 있습니다. 이는 본문 35절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의 대부분에 해당됩니다. 팔려갔던 자들, 그래서 종 노릇을 하던 자들이 조건없이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운 좋게도 종으로 팔린 지 하루 만에 희년을 맞이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수십년의 세월 동안 종의 삶을 살아가며 자유인으로 살던 기억들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종의 삶에 익숙해져서, 능동적인 의지는 꺾여 지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든, 희년이 선포되면 모두가 자유롭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매였던 삶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죄를 얼마나 지었던,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죄를 얼마나 질 것이던, 주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의 종 노릇하던 우리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죄의 저주에 매여있던 우리를 자유케 하사 모든 결박에서 해방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는 심령이 있길 축복합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던 종의 삶에서 자유를 선포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함께 주님을 따라가는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희년의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희년의 선포로 침노하는 하나님의 나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구약의 희년은 신약으로 넘어와서 십자가와 성령으로 완성되는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 곧 하나님의 나라로 기록됩니다. 희년이 오면 이스라엘이 보았던 구속과 해방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이미 희년이 선포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구속하시고 모든 결박에서 자유케 하신 희년의 축복을 취하여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희년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 뿐 아니라 이 나라와 열방에서 확장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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