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3

2018-6-10

 

 

에베소서 1: 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조의 3대 전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바울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하늘의 비밀! 에베소 서신의 인사와 함께 곧바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동기, 태초의 예정과 섭리는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 놀랍고 신비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그의 본성처럼 완전무결하고 선하신 뜻과 마음으로 아들들을 창조하시고 하루 같은 천 년, 천 년 같은 하루의 인류역사를 경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들의 역사와 창조의 전제로 세 가지를 정리하며 묵상해 왔습니다. 먼저는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듯,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새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반역하고 죄를 선택할 것을 이미 아셨기에, 다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심으로 우리가 택한 죄의 값을 치루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놀랍고 원대한 태초의 예정은 창조의 두 번째 전제, ‘사랑 안에서’의 가장 큰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의 피를 흘려서라도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며, 우리가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자라는 아들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완전한 하나님께만 속한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완전한 사랑 안에서 우리가 예정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창조의 전제를 나눕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시되 또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가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쁨으로 뜻을 행하며 달려가는 열정 -그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동기와 전제에 ‘그 기쁘신 뜻’이 있습니다. 이는 흥미로운 단어의 조합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가벼운 무게로 느껴지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굳센 의지와 연결되는 ‘뜻’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를 그의 마음속에 품으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멈추지 않는 강한 의지로 아들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기쁨과 분명한 뜻이 만나는 곳에 ‘열정’이 발생됩니다. 열정은, 쉽게 마음을 움직이는 가벼운 감정이나 아무런 목적 없는 가치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창조하신 아버지의 마음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뜻으로 인해 끊임없이 솟구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호세아서를 봅니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 몇 번이나 간음을 반복하며 심지어 죄로 인한 자식을 낳는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주님은 엄히 책망하시면서도 결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꾸짖으시며 한편, 결코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창조주의 열정입니다. 멈추지 않으시는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러한 하나님의 열정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즐거운 감정을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이성적 동의가 이끄는 대로, 의지로만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목적이 불분명하고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가는 즐거움은 거짓 열정 속 모습입니다. 사랑의 기쁨 없이 목적을 위한 의지만으로 계속되는 행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행함은 종교일 뿐입니다. 넘어지는 날에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열정’이 회복되길 기도합시다. 멈추지 않는 사랑으로 인한 깊은 갈망, 곧 굳은 뜻이 품어지길 구합시다. 이것이 아들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마음 속, 그 기쁘신 뜻입니다.

 

태초부터 흘러온 신의 사랑, 영광의 아가페
그렇기에 사랑을 더 깊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의 요소와 의지에 속하는 굳은 뜻이 동반되어,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열정의 기반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랑은 창조의 동기이며, 목적이며,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결코 흔하고 가벼운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하늘에서 예정된 사랑을, 세상이 노래 부르는 사랑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헬라어는 사랑을 에로스, 필리아, 스토르게, 아가페로 나누어 말합니다. 본능적이면서 또한 조건이 채워지면 유지되는 에로스와 친구나 형제 간의 사랑, 또는 부모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스토르게와 필리아가 사람들의 사랑이라면, 아가페는 신의 사랑입니다.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에나 등장하는 사랑입니다. 놀랍게도, 주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의지로 도달할 수 없는 아가페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가페의 사랑을 행할 수 있을까요? 또한 그에 앞서, 아가페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이해하며 경험할 수 있을까요? 본문 4절의 ‘태초’란 단어에 주목합니다. 사랑으로 아들들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태초의 신비를 말하는 대표적인 본문들, 우리가 묵상중인 에베소서와 창세기, 요한계시록, 그리고 요한복음을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시며,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요한복음 1장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육을 입고 이 땅에 온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태초부터 함께 교제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종종 나누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코이노니아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이를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마지막 기도를 하시며, 창세전에 아버지와 사랑으로 나누셨던 코이노니아, 그 영광의 교제가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구하십니다. 창세전부터 사랑으로 나누어진 영광. 영원한 영광 속에서 나누어지던 이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그렇기에 아가페는 영광을 경험하지 않고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구령의 열정, 우리 안에 역사하는 아가페 사랑

태초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누셨던 영광의 코이노니아 속 사랑, 아가페. 저는 이를 다른 표현으로, 영원한 존재가 영원한 존재를 향해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나누는 사랑이라 말합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영원한 존재로 아들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누셨던 영원한 사랑, 곧 결코 끊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여 경험하게 될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여 신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아가페가 우리에게서 또 다른 모습으로 흘러 나가는 것이, 구령의 열정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영원한 존재로 지어진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과 모욕과 핍박을 감수해서라도, 한 영혼을 사랑함으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 열정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욱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아가페 안에 머무르며 아가페로 우리 삶이 끌려가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기도와 예배의 자리가 소중합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와 영원한 영광, 그 안의 아가페 사랑은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즌, 더욱 기도와 예배의 자리를 사수하며 아가페가 부어지길 구합시다. 영광의 코이노니아를 누리도록 하나님 앞에 머무릅시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든 능력을 회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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