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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

에베소서 1: 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를 여는 선포에 담긴 바울의 마음>

에베소서의 여정을 시작하며, 우리는 이 서신의 인사에 해당되는 1:1~2의 말씀을 묵상한 후, 3~14절을 건너뛰고 15~19절 본문에 머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는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심정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더 깊이 에베소서 말씀을 소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채 에베소 교회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 바울은 인사의 말을 마치자마자 이 서신 전체의 본론이자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선포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마치 타오르는 감격과 흥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하나님을 찬송하며 글의 서두부터 본론 같은 메시지를 던져버립니다. 사실, 바울의 이러한 심정은 그의 또 다른 서신인 고린도후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와는 달리, 셋째 하늘이란 영적 세계를 포함하여 더 깊은 하늘의 비밀들을 풀어낸 고린도후서도 이러한 흥분과 감격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더 깊은 차원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들을 전하였던 고리도후서처럼, 에베소서 역시 에베소 교회에게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더욱 깊고 본질적인 진리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와 창세 전부터 예정되었던 주님의 뜻과 섭리. 이를 전할 생각만으로도 바울의 마음이 흥분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14절로 이 편지 전체의 중심에 해당되는 내용들을 선포한 후, 잠시 멈추어 17절로 기도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여 이 모든 하나님 나라의 일, 곧 우리 하나님과 부르심의 소망과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과 능력을 깨달아 알게 되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태초에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동기와 배경 –아들들>

에베소서는 더 높고 깊은 곳으로 교회를 부르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곧바로 인류 역사를 시작하신 주님의 창조의 목적과 동기와 배경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때로 쓰라려 보이기만 하는 사건들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흥망의 변천을 지나 흘러온 인류 역사를, 주님은 왜 시작하셨나요? 수천년의 세월동안 왔다가 사라져가는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이며, 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답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이유에 대하여 ‘아들’이란 답을 주십니다. 이제, 아들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묵상함에 앞서 먼저 주목할 단어를 봅시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이는 1장에서만 열 번이 넘게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아들 됨’은 ‘그리스도 안에서’란 대전제 안에서 풀어집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과정, 그 목적과 동기와 배경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아들들을 향한 온전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창조의 계획이 시작되었던 주님의 세계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천사들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사람이란 존재를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모든 창조물처럼 하나님께서 지으시되, 육을 입고 또한 영이 있는 영원한 존재. 주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으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교제할 수 있는 존재. 창조의 세계에 속하되 다스릴 권세를 받은 존재. 이제까지 우주 어디에도 그런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영광스러운 그의 아들들을 만드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천사들이 이를 반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자유의지를 가진 영원한 존재는, 불안했고 또한 불편했습니다.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루시퍼는 더욱이 이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라는 존재, 곧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받는 ‘사람’을 루시퍼는 견딜 수 없었고, 결국 교만이라는 돌에 걸려 타락하고 저주받은 악한 영이 됩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났고, 이 땅에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지음 받은 사람의 대적이 됩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했던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사탄은 처음부터 인간 창조에 분노했고, 아들들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 대한 권세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이 선악과를 먹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었을 때, 모든 피조물이 슬픔에 잠겼을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등장했던 하나님의 형상, 땅의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각기 지어주었던 위대한 창조주의 모형,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한 함께 교제하였던 그의 아들이 불안해 보였던 자유의지로 인해 결국 사망에 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계획은 완전하고 또한 온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배신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천사들도 반대했을지 모르는 자유의지를 우리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로 인해 우리가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죄를 지을 지라도 다시 구속하여 아들의 이름과 권세를 되찾아 주실 계획까지 이미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은 창세 전부터 시작된 사랑의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안전하고 완전하며 온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위대한 주님의 예정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 없는 자유의지로 도리어 아버지를 반역한 우리를, 그렇게 죄와 허물로 인해 죽어버린 우리를, 다시 아들로 부르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를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돌이킬 때 날마다 풍성해지는 성도의 삶>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원형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됩니다. 우리에게 심겨졌던 영광의 씨앗들이 열매맺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온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아들의 모든 연약함을, 두려움과 고통들을 십자가로 통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엉클어진 삶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답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여 연합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 됩니다. 이것이 회개의 삶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게 합시다. 주님의 생명 안에 머물지 못할 때, 죄를 이기지 못하는 내가 주인 되어 삶을 이끌어 갈 때, 균열과 파괴가 옵니다. 이 한 주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회복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죽기로 결단합시다. 창세 전에 시작된 우리 주님의 온전한 계획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에게 심겨졌던 위대한 하나님의 DNA와 부르심의 목적과 그를 위한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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