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밝히사 2

에베소서 1: 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경험과 지식으로 말미암지 않은 영적 지성, 마음의 눈 지난 주, 지혜와 계시의 영이 더 깊은 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행하는 두 번째 일,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함을 나누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지혜와 계시의 영은 이제, 우리의 영적 지각 능력이 깨어나 영적 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혼의 영역에 속한 이성적 판단, 경험, 지식의 습득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요일5:20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참된 자를 알게 하셨다고 하며, 히5:14은 장성한 자들을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거닐던 에덴 동산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본디 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동행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버렸고, 영의 활동이 멈추어졌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해야 했습니다. 영으로부터가 아니라, 육과 혼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거듭난 우리의 영이 생명으로 활동하려 할 때, 그렇게 쌓여진 경험과 지식이 주의 음성을 따라 동행하는 삶을 가로막게 됩니다. 내 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생각, 지성소에 임한 영의 소리를 거부합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며 율법에 능통하였던 바울도 그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말씀의 본체 되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지혜와 계시의 영이 바울로 하나님을 알게 하였고,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 시즌, 더렵혀진 우리 내면의 창문이 깨끗이 씻겨 지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육과 혼에 의한 경험과 지식이 아닌, 중심에서부터 들리는 소리, 영으로 말씀하시는 주의 소리를 따라 전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의 정체성
부르심을 받은 자들본문은 영적 지각 능력이 깨어나 마음의 눈이 밝아지며 일어나게 되는 세 가지의 일을 이어 말합니다. 그 첫째는 부르심의 소망이며, 두 번째는 영광의 풍성함, 세 번째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입니다. 이 한 주 동안 그 첫 번째, 부르심의 소망에 대해 나누며 묵상하려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부르심’이란 중대한 삶의 가치입니다.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말하고자 할 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 정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중심에 ‘천당’이 있지 않습니다. 표현만 다를 뿐, 다른 종교에서도 ‘극락’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종교와 스스로를 구별하는 중심에는, ‘지금도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심 받은 자들’이란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구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구원에 매인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정체되어 굳어져 버립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사, 부르심의 자리로 부르고 계심을 항상 유념합시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부르심의 소망은 우리를 부르신 자의 확신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부르신 목적, 우리를 향한 부르신 자의 기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확신과 분명한 목적과 기대가 있으십니다. 내 모습과 오늘의 상황을 보며 스스로 낙심할 수 있으나,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도 확신과 기대로 부르심의 소망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부르심 안에서 깨닫는 세 가지 하늘의 비밀 –첫째, 인간 창조의 목적 이제, 부르심의 소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구하고 있는 부르심의 소망은 에베소서 전체 안에서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내포합니다. 먼저는 인간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만드셨으며, 이 긴 인류역사를 끌어오고 계실까요? 엡1:3~14 말씀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인류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말함으로 답합니다. 우리는 후에 이 주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의 결론을 먼저 나누자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때로,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한 상황들과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의 사건들은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오해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의 마음이 언제나 우리를 위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이 진리를 결코 잃지 않길 축원합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육체를 입은 아들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사 못 박기로 결정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부르심 안에서 깨닫는 세 가지 하늘의 비밀 –둘째, 나의 창조의 목적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또한 ‘나’의 창조의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택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이루어 가도록 맡기신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개인의 부르심 안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발견된 부르심 안에서 자아실현과 진정한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소유를 통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외모, 인기, 좋은 집을 얻기 위해 한 번 뿐인 삶이 허비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실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고 그를 끊임없이 이루어 갈 때, 이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으로 충만해집니다. 오늘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이끌어 부르신 자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 그 곳이 곧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아실현의 여정입니다. 칼빈이 직업 소명설을 말하였듯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행하며 자아를 실현할 때, 나를 두신 그 자리에서 세상을 이기는 기쁨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또한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열매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실,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걸림돌 같은 존재였던 적이 많진 않습니까? 주님은 때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아시면서도 당신의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십니다. 그 곳에서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부르심의 자리에서, 우리는 주님을 더욱 닮아가게 됩니다. 주께서 내게 맡기신 영역, 부르심의 자리를 깨달으며 기쁨으로 사수하길 축원합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나란 존재를 주 안에서 더 분명하게 발견하며 행복과 즐거움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며 성숙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또한 동역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 안에서 깨닫는 세 가지 하늘의 비밀 –셋째, 교회 창조의 목적
마지막은 교회 창조의 목적입니다. 이는 에베소서를 묵상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일 것입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2장은 주님이 교회를 하나의 인격체, ‘한 새 사람’으로 보신다고 합니다. 결코 하나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방인과 유대인이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창세 전의 뜻과 경륜처럼, 주 안에서 연합하는 부르심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이 시대, 왜 교회가 약해져 가고 있습니까? 이 정체성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가 과녁을 빗나간 것,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라 합니다. 우리에게 부르심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부르심을 잃어버린 삶이 길에서 벗어난 죄의 상황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택하여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신 주님은 교회로 그 부르심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심겨진 부르심이 몸을 이루며 함께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이 시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으로 충만케 하시길 축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동역하는 삶의 즐거움으로 오늘도 승리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