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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4

에베소서 1: 15~19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세상을 이기는 능력, 하나님을 아는 깊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더 알도록 기도하는 여정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보이지 않는 우리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보다 깊이 알며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마귀는 그럴듯한 교묘한 속임으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려 합니다. 특히, 힌두교는 묘하게 기독교와 닮아 있으면서 성경을 완전히 위배함으로 진리를 대적합니다. 말씀을 해체하고 다원주의와 인본주의로 우리의 믿음을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에서 우리로 승리케 하는 능력, 하나님을 아는 깊이에 있습니다.

<아들이 된 하나님, 예수님의 신(神)성> 지난 주, 삼위일체 하나님 중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나누었다면 이제, ‘아들 하나님’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려 합니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를 기독론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거대한 주제를 예수님을 아는 것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성경 한 구절을 통해 세 가지로 정리하려 합니다. 빌2:6~11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를 앎에 있어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 완전한 하나님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계셨으나, 창세 전 존재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세상 사람과 우리를 가르는 차이입니다. 세상은 2천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유대 청년 예수를 세계 4대성인 중 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누구도 본 적 없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비밀한 은혜가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으나, 처녀에게서 잉태된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은 바로, 당신의 신(神)성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지는 않으셨으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등한 자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의 예수님께서 또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 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한 이유도 이러합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그들은 깨닫지 못한 비밀이 우리에게는 열렸습니다. 2천년 전 이 땅을 거니셨던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이 된 하나님, 예수님의 인(人)성>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서 9장은 예수님을 한 아기이자 한 아들이라 동시에 표현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구분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 하나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으나, 또한 ‘아기’, 즉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앎에 있어 또한 분명해야 할 두 번째는 주님의 인(人)성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내려놓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사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태초의 말씀이 육신을 입으사, 로마서 8장의 말씀같이 장차 회복될 아들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체휼하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고통과 번민을 주님께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곳곳에서 주께서 느끼셨던 육체의 고단함과 한계의 상황들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주님은 육체의 한계 그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복음서는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심히 고민하시며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기까지 씨름하셨다 합니다. 여기서 기억할 예수님의 인(人)성의 두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체휼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죽기위해 오신 분이란 것입니다. 주님은 정치적 희생물로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어린 양이 되사,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당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며 물러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온 순간에도 예수님의 능력이 드러나,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주님은 사람들이 잡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허락하십니다.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케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된 하나님, 예수님의 성취 –성령으로 완성하신 임마누엘>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아들이 되사 땅과 하늘에서 성취하신 일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신(神)성과 동시에 인(人)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육으로 이 땅에 오사 임마누엘을 완성하셨습니다. 요1:29~34을 주목하여 봅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라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어린 양의 사역만 감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의 멍에에서 자유케하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역입니다. 완전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완성되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사,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내졌습니다. 우리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우리 안에 거하는 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풍랑을 잠잠케 했던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을 만지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주와 함께 동행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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