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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3

에베소서 1: 15~19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땅의 일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어떻게 믿겠느냐 한 밤중 홀로 예수님을 찾아온 이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달달 암송하고 날마다 읊조리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지도자의 자리에 있던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주님께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어머니의 태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방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식이 풍성하고 권위가 있었을지라도, 그의 삶은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깨달을 수 없는 3차원에 매여 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머리로 이해가고, 마음으로 동의되고,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는 종교 생활에 머물러 있지 않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광대한 세계를 더욱 알기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본문의 기도가 그를 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이해와 동의와 의지를 초월하여, 이 땅을 움직이는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에 연결되길 기도하라 도전합니다. 이 시즌, 계속하여 하나님을 알길 구합시다. 더 깊은 4차원의 세계로 나아오라, 주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들을 창조하사 역사를 시작하신 아버지 하나님 –역사의 계획자 지난 주, 삼위일체의 신비와 믿음의 기적을 나누었다면 이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분씩 더 깊이 아는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위의 주체가 되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아는 여정의 출발점과도 같습니다. 아버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브’는 히브리어 첫 알파벳, 알렙으로 시작하는 첫 단어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의 첫 단어가 ‘아브’,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듯, 그 뜻에 ‘근원자’, ‘창시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든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사람을 만드사, 아들 삼기로 계획하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근원되시며, 세상의 시작되신 아버지 하나님을 깊이 알길 축원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세상과 구별합니다. 우연히 발생한 진화에서 비롯되어, 우연한 여정을 따라 인류가 이어져왔다는 세상의 이론은 결국, 물질주의와 무신론적 사회주의를 낳으며 사람들에게서 영원의 세계를 빼앗아 갑니다. 나의 근원이, 세상의 시작이,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믿음위에 날마다 굳건히 서길 축원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세상이 흔들 수 없는 용기가 우리에게 부어질 것입니다.

뜻을 결정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 아버지 하나님은 또한, 역사의 결정자시며 인류사회 변천의 주관자 되십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계획하고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흘러온 이 땅의 시간들을 그 뜻대로 이끌어가는 권한으로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맺어지는 우리의 기도가 아버지를 부름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도록 길을 여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답하실 때도, 역사를 결정하고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권한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전능함으로 아버지의 일과 아들의 일을 구별하십니다. 완전하고 온전한 코이노니아 안에서, 역사의 주관자로 세상을 운행하는 분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이끄시는 아버지 하나님 -사랑의 근원 아버지 하나님을 앎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의 모습이자 본질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아담을 창조하사 아들삼기로 계획하시고 인류역사를 시작하사 주관하시는, 이 모든 동기는 바로 사랑입니다. 영원하고 변치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더 깊이 체험되길 축원합니다. ‘사랑의 근원되신 아버지’는 우리가 자라온 가정환경과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가장 빼앗기기 쉬운 아버지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더욱 아버지의 사랑을 알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가 당신을 떠날 것을 알면서도, 그의 형상대로 우리를 빚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에게 육신을 입히고 결국 그를 못 박아서라도, 우리와 함께 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결정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이 사랑으로 우리가 지음 바 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는 오늘도 감당할 수 없는 이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아버지 하나님 –부와 능력의 주인되신 아버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사, 잃어버린 자녀의 권세를 돌려주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며 세상을 경영하는 신이 아버지 되심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이면서 실감되는 말씀이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을 비유하는 듯한 큰 아들과, 이방인을 비유하는 듯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로,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가 과연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게 도우십니다. 이 이야기 속 아버지는 힘과 권세의 주인으로 그려집니다. 어떤 흉년에도 아들을 먹이고 보호할 수 있는 풍성함이 아버지께 있습니다. 앞서 나누었듯, 하늘의 아버지는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권세가 아버지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비유에서 우리가 반드시 취하며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아버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떠나간 아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아버지 하나님 –회개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예수님의 비유 속 아버지는 또한 떠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재산 중 자신의 몫을 먼저 달라고 요구하더니, 허랑방탕하게 모든 것을 낭비한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하나님 아버지는 회개를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날마다 우리가 당신이 계신 곳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의 삶에 주목하기보다, 우리가 돌이키는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이 시즌, 아버지의 이러한 마음이 우리에게 깊이 심겨지기 원합니다. 아들이 돌이키길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반도의 지도자들을 위해 중보해야 합니다. 탕자와 같이 주려 죽을 상황에서, 아버지께 돌이키는 은혜가 부어지길 기도합시다. 그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소망을 주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합시다. 한 주간, 언제나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에 더 깊이 연결되길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능력을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오늘도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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