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사 2

2018-2-11

에베소서 1: 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나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 내일을 준비해야 할 때

에베소서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울 서신의 집약체와 같은 이 말씀을 한 구절씩 묵상하며 내면을 단단히 다질 올 한해, 이 여정이 끝날 즘에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깊이 아는 은혜로 충만하길 축원합니다. 이제, 나의 열심으로 주를 따르며 나의 능력으로 주를 섬기는 이전의 차원을 넘어서야 할 때임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안에서 그의 뜻을 함께 이루어 가기 위해, 주의 은혜로 동행하며 주의 능력으로 동역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에베소서의 도전이 단단한 음식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즌이 나의 열심과 열정으로 곡식을 준비했던 가인의 제사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을 잡아 드린 아벨의 제사를 기억할 때라 믿습니다. 사울의 삶과 다윗의 삶을 마음에 새겨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아는 깊은 자리로 나아갑시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가 우리 안에 풀어질 것을 바라보며, 주께서 행하실 일들을 날마다 기대합시다. 

 

성도와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의 정체성

지난 주일, 에베소서를 여는 바울의 인사가 의도적으로 두 무리의 대상을 부르며 시작됨을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출신과 이방인 출신의 교인들을 향하여, ‘성도’와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란 각기 다른 호칭을 사용합니다. 이는 유대 출신과 이방 출신으로 나누어지는 두 무리가 각각 대표하는 그리스도인의 두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먼저 성도를 생각해 봅시다. 지난 시간 나누었듯, 성도란 선택된 민족, 즉 유대인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말씀이 베드로전서 2:9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성도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들, 즉 그의 택함받은 족속이요, 제사장이요, 나라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 위대하고도 특별한 정체성은 우리로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은 어떤 정체성을 말하고 있을까요? 약속이 없던 이방 민족이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그의 형상이라 외치시는 영광의 찬송, 잠시 이 땅에 머무르나 본디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은 자, 그리고 이 위대한 정체성을 함께 이루어가는 에클레시아, 곧 교회로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이 두 정체성이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성도이자 또한 예수 안의 신실한 자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와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를 구별하여 부른 바울의 의도

앞서 말한 듯, 그리스도인은 성도이자 예수 안에서 실신한 자의 정체성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정체성을 의미하는 각 호칭들은 자칫 에베소 교회 안에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러 초대교회들처럼 에베소 교회도 유대인 출신과 이방 민족 출신의 그리스도인이 한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다른 배경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바울의 더 큰 의도가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이에게 열린 하나님의 경륜 속 구속의 역사를 에베소 교회가 깨닫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된 위대한 하늘 공동체 ‘에클레시아’, 곧 교회의 비밀을 그들에게 이해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따르는 경건의 문화에서 자라난 유대인들과 세상의 풍속에 더 익숙한 이방 민족들. 이들 안에는 서로를 향한 판단과 그로인한 반목의 마음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갈등 상황에 놓인 에베소 교회에게 거대한 하늘의 경륜을 선포하고자, 의도적으로 이들을 나누어 불렀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또한 땅과 하늘이 하나되는 주님의 경륜을 알게 하고자 했습니다. 서로 다르나, 결국 하나되는 교회의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그 시작부터 부어진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담의 창조 이후 선민을 택하셨을까요? 선민, 곧 이스라엘의 위치는 무엇이며 그들의 존재는 오늘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 이후 아브라함을 택하여 한 민족을 이루게 하사, 그들을 통해 열방이 구원받는 구속의 역사를 이끄시기로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은혜의 경륜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여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그의 뜻과 계획대로 구속의 역사로 세상을 운행하시며, 열방을 경영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놀라운 역사를 생각해봅시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온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던 유대 민족이 독립국가로 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이 곳, 저 곳으로 흩뿌려진 세월만 2천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고터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이사야서와 그 외에도 많은 예언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 안에 다시 섰습니다. 선민은 인류의 역사가 주님의 철저하고도 분명한 의지와 정밀한 계획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의 선포입니다. 창조주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존재인 선민이 없다면, 우리는 진화론적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연에서 비롯된 지구의 역사를 믿는 자들은 유물론적 문화와 사상으로 진리와 생명을 사장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운행하시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 우리로 분명히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함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서는 진리를 믿음이, 우연에서 비롯되거나 문화가 만들어 낸 종교에 속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십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그의 뜻을 성실히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빈틈없는 당신의 계획을 세밀하고 철저하게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역사를 시작하여 세상을 운행하고 계시는 분,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선민, 이스라엘 –성도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하나님은 선민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민을 택하신 그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는 세월을 통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철저하고 분명한 뜻 안에서 세밀하게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한 분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이는 세상 속에서 하늘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격려이자 위로입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경영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절대로 이스라엘을 잊지 않듯, 결단코 우리를 잊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 순간, 직장과 가정에서 믿음의 씨름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 안심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셨습니다. 위기의 때마다 당신께 속한 인생들을 붙드셨듯이,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 삶을 붙들고 계십니다. 누가 물을 운행하고 누가 해와 달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이 나라의 역사가, 그의 손에 있습니다. 이 한 주간,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자라나길 축원합니다. 갈 바를 모르는 이 나라의 오늘,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들은 담대히 전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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