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을 찾아가는 신앙

사무엘하5:6~9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윗은 누구도 보지 못한 길을 보았습니다.

‘NO’를 찾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불평과 비난과 절망의 이야기는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이 복잡하고도 부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YES’를 외치는 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그 소리 되어야 합니다. 아직 가능하다고, 그럼에도 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오늘이 가치 있는 날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본문을 봅시다. 사무엘하 5장은 다윗의 치적 중 하나인 예루살렘 전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차지하기 전 예루살렘 성은 원래 이방 족속인 여부스의 성읍으로, 깎아지는 절벽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바위 성이었습니다. 칼과 칼을 맞대고 온 몸을 부딪쳐 싸워야 했던 당시 전쟁의 상황에서, 절벽을 기어오른 후 또 다시 그 위에 세워진 바위 성을 타 올라 성읍을 차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500년 동안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성 안에서,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의 군대를 무시하며 비웃었습니다.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손톱이 다 빠지고 기진맥진한 채 성 벽에 매달린 적들에게 뜨거운 물을 붓거나 막대기로 머리를 밀쳐내기만 해도 승리할 수 있던 여부스 인들에게는, 맹인이나 다리를 저는 자들로도 다윗의 군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이 성을 바라보며,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어떠한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를 이룰 방법들을 찾아내 기어코 해냅니다. 500년 동안 굳건했던 예루살렘 성을 보며, 다윗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절벽에 세워진 바위 성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물’입니다. 바위 성 안에는 여부스 족속을 충당할 만큼의 물이 없습니다. 이는 다른 수원지에서 물이 공급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 수원지, ‘기온 샘’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정찰대를 보내 기온 샘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길목마다 수로를 찾아내도록 수색을 시킵니다. 마침내 나무와 흙과 돌로 감추어져 있던 비밀 통로가 발견됩니다. 지름만 2미터로, 성인 남자가 무장하고 달려갈 수 있는 기습 통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500년 동안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성이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로 인한 지략으로 다윗에게 주어졌습니다. 할 수 없다 말하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 할 수 있다 말하는 자에게는 열립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포기란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담임 목회자로 사역했던 교회는 ‘망한 교회’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편이 나뉘어 7년 동안 치열한 분쟁을 해왔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성도 간의 몸싸움 때문에 지역 경찰이 출동한 횟수만 서른 번이 넘었습니다. 재산권에 대한 문제로 주 대법원까지 간 재판이 7년간 지속되었고, 주변에서는 수시로 경찰이 출동하는 말썽뿐인 교회라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이런 교회에 성도들이 남아있을 리 없습니다. 교인들은 떠나가기 시작했고, 남은 자들은 10여명이었습니다. 어떤 사역자도 가려 하지 않는 이 교회의 남은 성도들이 작정기도를 하며 담임 목회자로 초청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당황스러울 만큼 놀랍게도, 주님은 생각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부담스럽기만 한 이 여정으로 저를 움직이셨습니다. 오직 주님을 신뢰함으로 난생 처음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마자 저를 반긴 것은 도마뱀입니다. 7년 동안 방치된 예배당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한편에는 꽃과 풀이 자라나 있었습니다. 하나, 둘씩 예배의 처소를 정리해가며, 교단 지방회에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만나는 분들마다 저를 만류하십니다. 수십 명 목회자들의 멱살을 잡은 이민 교회, 지역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린 교회라고 비난뿐인 곳인데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리셨습니다. 교회로 돌아와 보니, 이민사 편찬 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분쟁이 잦은 수많은 이민 교회 중에서도 이 교회처럼 대법원까지 가서 7년간 분쟁을 한 교회가 없으니,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자료를 요청합니다. 사역을 시작한지 한 달 동안 제가 보고, 들어왔던 것들은 모두 이러했습니다. 안 된다는 소리, 저주와 같은 욕만 들으면서 한 달 목회를 하고 재정 결산을 했습니다. 교회를 유지할 많은 비용 중, 전기세 하나 만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만 교회 문을 닫는 것 뿐인 듯합니다.. 이 교회 문을 닫기 위해 저를 보내신 것입니까?’ 주님은 대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을 물으셨습니다. “너는 부활을 믿느냐?” 부활의 믿음은 우리만의 특권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물음 앞에 저는 기도로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자가 일어난 부활을 믿는다면, 망한 교회가 살아날 것은 왜 믿지 못하는가! 교인들을 살펴보니, 모두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눈빛에도 생기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주일, 저는 부활의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안 된다’ 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맙시다. 이미 모두가 이 교회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의 믿음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을 믿는다면, 무너진 사업이 회복되는 것은 왜 못 믿습니까? 방황하는 자녀들이 돌아올 것은 왜 못 믿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합니다. ‘망한 교회’라고 소문난 이곳에 부활의 믿음이 있다면, 주님은 주님의 일을 하십니다.” 부활의 믿음을 설교한 바로 다음 주, 교회에 등록하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분이 다가와 심방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파산 후, 도망치듯 이 도시로 이사 온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분쟁으로 인해 받은 상처 때문에 목회자들의 멱살을 잡아 끌며 교회를 다닌지 수십 년. 그런 영적 상태에서 사기를 당하여 파산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이 도시로 오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식료품점에 진열되어 있는 설교 씨디들 중에서 제 설교를 골라 듣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면, 실패한 가정이, 사업이,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왜 믿지 못하냐는 말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그만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 주님은 성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혼한 가정, 자녀가 방황하는 가정, 파산한 가정들이 찾아왔습니다. 심방을 하며, 제가 한 말은 하나뿐입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같이 한번 다시 시작해봅시다.”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각 가정과 사업들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2년 만에, 망한 교회가 살아났다고 소문이 퍼져갔습니다.

우리가 행할 시대적 사명, 이 땅에 소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을 봅니다. 주님의 신부로 아름답게 서야 할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신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문제투성이인 교회를 다시 일으키길 원하십니다. 5년간의 미국 목회를 통해 배운 것은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쉽게 손가락질 하고, 또 금세 칭찬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한결같이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안다면, 오늘 우리는 기어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외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봅시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할 때마다, 많은 고초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한 예언자들의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이스라엘이라는 거목에 도끼가 놓여 잘리게 될지라도, 주께서 그루터기를 남기신다는 희망입니다. 다시 새싹은 움틀 것이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땅의 교회에게 부여된 소명임라 믿습니다. 교회는 도저한 절망의 날에도, 시대가 감당 못할 메시지를 외쳐야 합니다.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에, 우리가 소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삶이 희망의 불꽃으로 타올라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희망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신뢰합시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북녘의 동포들에게, 조국 대한민국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을 전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주님과 함께 오늘의 모든 장벽을 뛰어넘고 찬란한 내일을 맞이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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