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만 바라보라
히브리서 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의 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은 우리가 가진 믿음과, 이 믿음을 살아낸 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로운 자의 증거를 얻었고,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않고 아이를 숨겼으며,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어 죽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 12장은 11장에 이어 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끝까지 승리할 수 있던 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도 절실합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거짓이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이 시대, 주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가 승리하는 길입니다.
첫째, 예수가 기초입니까?
예수를 바라보는 삶,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고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기위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나의 기초가 예수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가운데 예수님이 반석 되고 계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지금,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매 순간, 주님이 기초되셨습니까? 이는 내가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의 점검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착각하기 쉬운 두 가지에 기대와 신념이 있습니다. 기대는 우연으로부터 내가 바라는 어떠한 일이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구를 통하여,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대는 주님이 아니더라도, 우연하게 원하던 것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신념은 그 주체에 ‘나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굳게 마음을 먹고 결단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권한 밖의 상황이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내 한계를 직면했을 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기초가 된다는 것은 우연이나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기대나 신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6장,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가 기초가 된 자는 진정 거듭난 자 입니다. 나의 기질, 나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삶에서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을 사는,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삶의 이유가 달라지고, 삶의 주체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가 기초가 되길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초되실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가 삶의 목적입니까?
두 번째로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목적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로 시작되어 예수가 기초 된 자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삶의 목표이자 목적이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말씀은 우리가 고민하는 오늘의 문제들이 우리 삶의 목적되신 예수님에게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절박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상담을 해오는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실상 그들의 고민이 진리 안에서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절실하다고 말하는 바람의 중심에는 나의 나라가 있습니다. 주님과 아무 상관없이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때, 우리를 주장했던 평강은 깨어지고 불만과 불안이 삶을 덮칩니다. 염려와 불안과 불만 속에서 오늘을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의 목적되신 주님을 다시 바라보길 축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길 구합시다. 우리가 씨름하는 삶의 모든 현장마다 주께서 영광 받으시고, 주께서 영화롭게 되길 기도합시다. 주님은 삶의 목표와 목적을 당신께 둔 자들의 모든 수고와 짐을 가볍게 하시고, 자유케 하시며, 평강으로 오늘을 이끄실 것입니다.
셋째, 내가 의지하는 분이 예수입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가 유일한 대상이 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대상이 되고 있는가란 질문은 우리 삶에 여러 의미로 적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예수님이어야 하고,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대상이 예수님이어야 하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본문을 다시 살펴 봅시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고통의 날들을 이겨내고 그들 앞의 경주를 끝까지 마쳐, 모든 무거움과 죄를 벗어버릴 수 있던 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이를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닌 척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의지하려 합니다. 내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대상이 물려받을 유산이나 재산의 축적에 있지는 않습니까? 혹, 자식이나 남편이나 가족이지는 않습니까?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변화와 혼돈으로 세상이 움직일 시대,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영과 혼과 육을 보존할 것입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처럼 사랑을 주고 나눌 대상이지, 의지하고 신뢰할 분은 오직 예수님 이십니다. 20년 넘게 사역을 해오며, 이 길을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큰 상심과 어려움을 겪으며 사역을 그만두고, 식당이나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좀처럼 기도 부탁을 하지 않는 저이지만, 중보자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그 때 제가 신뢰하는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님이 목사님 기도를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라 말하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에 당황하는 저에게, 그 사람은 주님이 “그 아들은 내가 중보 한다.. 네가 더 기도하지 마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사역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고난 중에 있던 저를, 주님이 붙들고 계셨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아무도 없어 보일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맙시다. 실수하고 흔들리는 사람을 신뢰의 대상에 두지 맙시다. 쇠하고 무너질 땅의 것들에 기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축원합니다. 모든 것이 진동하는 때,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 승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