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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가 ‘다시’되기 위해

역대상 15:1-15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백이십 명이요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이십 명이요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백삼십 명이요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 명이요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팔십 명이요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가 백십이 명이라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2017년, 우리에게 선포된 ‘다시’의 상황과 열매>

2017년의 한 여름 가운데서 얼마 남지 않은 하반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 때, 올해가 시작되며 우리에게 선포되었던 메시지 ‘다시’를 생각해봅니다. ‘다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ZERO의 상태이기도 하고,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며, 새로운 출발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다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선명하게 체험되고 있습니다. 나라 안으로는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되었고, 우리 교회는 침례 교단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일 가운데 우리가 분명한 하나님의 일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받은 감동 그대로 교회의 부속 건물이 정확히 연결되었고, 다음세대와 이 나라를 위한 중보의 열매로 누군가는 땅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한 몸된 모든 이가 주님의 ‘다시’를 따라가며, 주와의 동행 안에 맺는 이 모든 열매로 격려받길 축원합니다. 주께서 여시는 길을 따라 주와 함께 걸어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때입니다.

<‘다시’를 시작하는 원리 첫 번째,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

주께서 선포케 하신 ‘다시’가 이 나라와 우리의 삶에 축복이 되기 위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스스로 점검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이 전의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와 함께 다시 달려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먼저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예수님께서 외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도 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회개란 무엇입니까? 탄식하고 울며 후회하는 것입니까?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한다 하더라도 회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회개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준으로,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역대상 11~15장은 다윗 한 사람을 넘어, 이스라엘 전체가 새로운 왕조로 다시 서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이 행한 일이 법궤를 옮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13장에서 법궤를 옮기려다 실패했었습니다. 달구지에 법궤를 싣고 나르다가 소가 미쳐 뛰고, 사람이 찢어져 죽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를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사울이 죽고 새로운 한 사람이 왕으로 설 때, 이 모든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법궤를 옮기려 했던 다윗의 시도는 이미 한 차례 실패했고 많은 사람들이 다윗 왕권의 정당성에 대해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온 백성이 피가 낭자한 끔찍한 사건을 보았고, 법궤는 결국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왕으로서 다윗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시작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달구지에 법궤를 옮기는 것은 이방인이 신상을 옮기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레위인들을 세우고 법궤를 매어 옮기게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으로 회복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쥐엄 열매를 먹던 탕자가 후회에 머물렀다면 회개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수치와 후회 가운데서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기에 회개는 성결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악한 왕 아합 아래에 있던 오바댜를 기억합시다. 회개하여 돌이키며, 그렇기에 스스로를 구별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기억합시다. 여호와는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를 시작하는 원리 두 번째, 하나님의 마음으로 구하는 기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시’로 열매맺기 위해 기억할 두 번째는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은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기도의 전제조건으로 주님 안에 거하며 그의 뜻을 알고 구해야 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기도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구하여 그를 이루어 드리는 것, 결국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가 진정한 ‘다시’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져야 합니다. 온전하신 주님의 뜻을 알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역대상 12장은 다윗의 왕조가 준비되는 때,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이 서면서 어디에 줄을 설지 많은 자들은 눈치를 보며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시세와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은 모든 것을 걸고 다윗의 편에 섰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 가던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묻길 축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시록의 말씀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야로 그의 마음을 구하는 이 기도실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머무릅시다.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다시’를 시작하는 원리 세 번째, 돌파하는 기도>

세 번째는 돌파하는 기도입니다. 하늘의 뜻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는 영적 전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셨지만 공중에 묶여 있는 것들이 있을 때, 우리는 씨름하고 돌파하는 기도로 이를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10장은 이러한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1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던 끝에 응답을 받은 다니엘에게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충만을 상징하는 7이 완전함을 상징하는 3번 반복된 21일의 기도는 하늘에 닿기까지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질 때까지 돌파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를 엿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공격하는 원수와 씨름하고 공중에 묶여있는 결박들을 풀어내 돌파하는 기도로 승리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씨름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32장은 사면초가에 놓인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사역을 앞두시고 핏방울 같은 땀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원수가 우리를 둘러 진 칠지라도 믿음으로 씨름하며 돌파하는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합시다. 주님은 사람에게 박수받는 성공이 아닌, 영원한 상급이신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기도로 씨름하고 돌파하며 우리와 동행하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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