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진정 동행하는 삶-첫 계명과 둘째 계명의 삶


마태복음 22:36-40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와 진정 동행하는 삶-첫 계명과 둘째 계명의 삶>

우리는 오늘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 주간 저는 이 질문앞에 진중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는 한 성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바쁘게 사는 것 같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주님과의 동행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예수님을 위해 하고 있습니까? 사실은 내가 이루고 싶고, 내가 즐거운 사역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나의 기질을 따라 나를 위한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바쁜 사역들을 앞두고 이를 감당해내고 있는 이 때, 반드시 우리 스스로 점검해보아야 할 이 질문앞에서, 오늘 본문은 주님과 진정 동행하는 길을 안내하며 도전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많은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묻는 한 율법사에게 주님은 분명한 대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온 율법의 강령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이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대신관계로써의 율법으로 1~4계명을 한 돌판에 새기시고, 5~10계명을 대인관계로써의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결국 첫계명과 둘째 계명은 이 두가지의 압축인 것입니다. 여기에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 쪽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한 쪽에는 사람과의 관계로 당신의 율법을 두 돌판에 함께 주셨듯, 첫 계명과 둘째 계명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계명과 둘째를 연결하는 “그와 같으니” 란 단어는 원어로 그 무게와 가치와 힘이 대등한 관계를 비교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또한 이웃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열리면, 보이지 않던 영혼들이 보이게 됩니다. 관심없던 형제들에게 다가가며, 인내하기 시작합니다. 은혜로 부어진 사랑,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역사가 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우리를 위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모두 이루셨습니다. 모든 율법과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님 안에서 첫 계명가 둘째 계명이 만나며 귀결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던 우리에게 창조주의 사랑이 부어질 때,우리는 위로 하나님과 옆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안에서 그와 동행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자문해 봅시다. 예수에 대해 말하고, 예수에 대한 일을 하면서도 예수와 동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최면에 빠져서, 자기 위로를 위해서, 주님의 이름을 파는 자가 되지 않길 축원합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나의 기질과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진정 사랑하며 주와 함께 동행하는 길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삶-첫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하는 삶>

나는 주님과 실제적인 사랑안에 있는가? 아픔과 공허함을 일회적으로 피하게 하는 마취제나 진정제처럼 주님을 자기 위안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점검할 첫 번째는 ‘나는 오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이는 신나고 재밌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기질과 취향에 따른 선택이나 결과라면, 이는 주님이 명하신 자기 십자가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얼만큼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게하는 분명한 한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본문 39절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적 존재인 이웃을 사랑함으로 불가시적 존재인 주님에 대한 사랑함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21:15~18 말씀을 봅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다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의 기질과 성격과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지만, 결국 힘써 지켜온 그의 사랑은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맺어집니다. 처참한 실패안에 있는 그에게 주님은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며, 이제 베드로의 사랑이 그가 실패한 사람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될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이 때 주님의 요청이 “내 어린 양을 먹이라”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이 우리가 지고 따라야 할 십자가입니다. 때로 사랑하는 것이 아프고 피하고 싶을지라도 주님은 우리가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자라길 요구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이 십자가를 지길 축원합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삶-둘째, 주의 음성을 듣는 침묵의 삶>

주님을 진정 사랑하며 그와 동행하는 삶을 위해 자문해야 할 두 번째 질문은 ‘주님의 음성을 구하며 그와 대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은 잠언 8:17로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찾고, 또 만나는 이 은혜에 끊임없이 도전하길 축원합니다. 주님과의 교통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종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7장의 말씀과 같이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님과 눈을 마주치고 그의 음성을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억할 것이 침묵입니다. 때로 우리 안의 많은 소리들이 주님의 음성을 가리곤 합니다. 내 안의 요구들을 멈추고 잠잠하게 주님의 소리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집시다. 기도의 결론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의 뜻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시급한 문제에 당면했을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잠재우고,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내 영혼을 향해 잠잠할 것을 명하며, 주의 소리에 귀기울입시다.

<예수와 동행하는 삶-셋째, 주님을 느끼고 만지며 확인하는 삶>

마지막 질문은 ‘예수를 느끼고 만지며 그를 확인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와 동행하는 예수님을 날마다 느끼고 만질 수 있길 축원합니다. 특별히 매주 우리가 함께 드리는 이 예배가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린다는 것은 아는 노래를 몇 번이나 불렀는가 정도가 아닙니다. 저 역시 어떤 찬양들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집중하고 사수할 것은 때로는 찬양을 통해, 때로는 말씀의 선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만지는 것입니다. 창3:8의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봅시다. 죄를 진 아담이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숨었다고 합니다. 아담은 영이신 하나님이 거니는 소리를 들을만큼 깊은 친밀감을 누렸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임재가 필요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결코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곤고함과 두려움을 해결해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구합시다. 끊임없이 점검하고 돌이키며 도전함으로 한 순간도 주님과의 동행을 놓치지 않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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