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를 취하라13-성령의 검1

에베소서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2017년, 이 나라의 하늘 문이 닫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할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고 위대한 부흥이 오기까지, 기꺼이 교회에게 주어진 영적전쟁을 감당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 치열한 전쟁을 모두 통과하고 이기는 자로 서기 위해, 우리는 에베소서 본문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전신갑주를 나누어 왔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영적 무장을 하나하나 지나,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성령의 검입니다. 이제까지 나온 영적 무장들이 모두 방어를 주된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성령의 검은 공격을 위한 무장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4:7의 말씀처럼 원수는 우리가 그를 공격할 때, 피하여 도망합니다. 오늘, 성령의 검을 뽑아 마귀를 향하여 높이 들며 우리를 옭아매던 원수의 결박들이 끊어지고 우리 삶에서 마귀가 도망가는 승리를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이제 성령에 속하여, 성령이 휘두르시는, 성령의 검으로 무장합시다. 성령께서 원수의 일을 도말하시도록 우리에게 주신 그의 검을 뽑아 들 때입니다.

<성령의 검의 의미- 첫째, 모든 말씀>

바울은 에베소서 본문의 마지막 무장으로 성령의 검을 소개하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듯, 우리가 취할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은 성경 모든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66권 성경은 모두 성령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성령의 검의 근본인 것입니다.

<성령의 검의 의미- 둘째, 성령에 의해 해석되고 재현된 말씀>

그러나 성령에 속하여, 성령에 의해, 성령으로 공격력을 발휘하는 검이 되기 위해, 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성령의 검이란 성령으로 해석되고 재현된 말씀이란 점입니다. 성경은 성령이 아니면 그 안의 빛과 생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하늘의 책입니다. 성령님이 아니면, 학문적 소견과 철학에 따라 성경을 기록으로 밖에 해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의 말씀과 같이, 혼과 영을 찔러 쪼개는 살아있는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해석해주시고 재현해주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은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알 수 없다 말합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검이나, 특별히 성령에 의해 말씀이 해석되고 재현될 때 우리가 가진 성령의 검은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2천년 전 말씀을 기록한 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은 태초에 계시던 말씀이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사 하늘 나라의 일을 행함을 직접 보고, 들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적인 이해와 상식 차원에서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성경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의해 난도질 되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말씀들은 비유라 가르쳐지거나 거짓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말씀이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역사하는 말씀입니까? 성령께서 이를 가능케 하십니다. 성령의 재현이 없다면, 성경은 그저 예수라는 한 청년의 이야기,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개인적 체험과 소견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성경 모든 말씀이 오늘도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게 하십니다. 조리되지 않은 음식 재료가 열과 물을 가하여 맛있는 요리가 되듯이, 성령은 과거의 기록을 우리가 실제로 맛볼 수 있는 오늘이 되게 하십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이 말씀이 우리 삶에 재현되길 갈망합시다. 어느 날 부터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상식선 안에서만, 이해선 안에서만 말씀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적당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기준으로 성경을 취급했던 것을 멈추길 축원합니다. 모든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믿기에 나와 내 삶을 던져 말씀이 역사하는 인생을 사는 자들로 섭시다. 말씀은 여전히 압제된 자들을 자유케하며,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저주의 속박들을 끊어내는 생명입니다.

<성령의 검의 의미- 셋째, 성령에 의해 뽑아진 말씀>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은 성령에 의해 골라지고 뽑혀진 말씀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4장은 40일 금식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주님을 유혹하는 마귀를 꾸짖으시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귀가 말씀으로 예수님을 유혹하고, 주님도 그에 말씀으로 응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세상이 도전해올 때, 그를 향해 뽑아들 말씀이 있길 축원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이성과 사상으로 싸워 이길 수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승리케 할 것입니다. 위대한 치유 사역자 중에서 말씀이 없이 사역했던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나타난 만큼 공허했고, 안타까운 끝을 맺어야 했습니다. 어떠한 영적 상황에서도 그를 뚫어낼 수 있는 말씀을 가진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원수가 교묘하게 말씀으로 유혹하고 공격할 때, 그를 대적할 말씀을 소유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오든지, 성령께서 때에 맞는 말씀의 검을 뽑아 원수의 궤계를 깨뜨리도록 더욱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합시다.

<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과 만난 로고스, 레마의 말씀>

결론적으로 성령의 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과 성령이 만난, ‘레마’의 말씀입니다. ‘말씀’이란 한 단어로 표현된 한글 성경과는 달리, 사실 원어로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 그리고 아주 적은 비율로 ‘프뉴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말씀은 바로 ‘레마’입니다. ‘로고스’가 기록된 말씀을 말한다면, ‘레마’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심령에 비추어진 말씀을 말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40%의 비율로 기록된 ‘로고스’보다 더 많은, 60%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중요시 여긴 퀘이커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성령의 감동을 말씀안에서 검증하던 신앙의 균형을 잃고, 기록된 말씀을 무시하고 감동이나 체험에 치우쳐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직하게 이 본문이 ‘레마’로 되어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취할 하나님의 말씀을 승리의 검, 아버지의 검이 아니라 “성령의 검”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성령이 없는 말씀은 생명이 없는 율법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자고 외친 자들은 말씀에 통달한 자들이었습니다. 반대로 말씀 없는 체험은 우리를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은사주의의 리더십을 맡아오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떨거나 쓰러지며 주님을 체험하면서도 말씀이 없어서 자라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의 저자이시며, 말씀을 해석하시는 분이시며, 말씀을 오늘 이 순간 재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로고스가 성령과 만나,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레마의 검이 되게 합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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