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를 취하라11-구원의 투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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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 -말씀으로 머리를 감싸 보호하는 영적 무장>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진리의 허리띠에서 믿음의 방패까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하나 말한 바울은 이제 마지막 두 가지 영적 무장으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지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본문을 시작하며 말했듯, 바울이 말하는 전신갑주 모두는 말씀으로 무장함을 말합니다.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고 역사하는가에 따라 때로는 허리띠가, 때로는 호심경이, 때로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진리의 허리띠에서 믿음의 방패를 거쳐 새로운 단락으로 등장하는 구원의 투구는 마치 평안의 복음으로 발을 동여매라고 했던 말씀과 같이, 구원의 말씀으로 생각을 감싸라는 것입니다.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즌, 구원의 투구로 우리의 생각들을 보호하길 축원합니다. 치열한 영적전쟁의 상황 중에서, 우리는 나의 좋고 싫음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일지라도, 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10:3~5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을 대적하여 진리보다 높아진 가치관이 있다면 이 말씀을 나누며 모두 무너지길 축원합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나도 모르는 습관을 만들어냅니다. 구원의 투구로 어둠에 열린 문들을 닫고, 진리로 우리의 생각을 보호합시다.

<첫째, 투구로 써야 할 말씀-구원의 확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바울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써야 할 말씀인 투구의 수식어로 ‘구원’을 말하였습니다. 의의 흉배가 심장과 폐를 보호하듯,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는 구원의 말씀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보호하는 무장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구원이 분명하고 확고한 고백이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본문이 말하는 구원의 투구를 취하기 위해 구원을 두 가지의 관점으로 나누어 볼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악한 날에 원수가 아무리 흔들어도 요동치 않는 구원을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어느 한 날, 저는 참으로 생생하게 순교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앞서 죽임을 당한 한 무리가 있었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시체더미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내 안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이렇게 죽어서야 되겠니..” 내 마음에서 초자연적인 담대함이 솟구쳤고, 나는 엎드려진 시체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복음을 외치다가 총을 맞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죽음을 동경하거나 그래서 죽음의 영에 문을 여는 잘못된 묵상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의 나라를 맞이하는 날에 대해 묵상하곤 합니다. 순교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젠가 올 죽음을 평강 안에서 맞이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을 생각할수록, 제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십자가 외에,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 안에서 여전히 죄를 지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칭의와 동시에 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칭의로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께서 성화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한 우리는 죄에서 의로, 나에서 예수님으로, 육에서 영으로 돌이켜 새로운 피조물로 살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이 분명한 구원의 확신안에 거하길 축원합니다. 사역을 하며 보게되는 것은 내적 치유와 축사의 많은 경우가 복음이 분명해질 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영광의 삶을 위해 우리가 그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과 능력과 영광은 내가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 때, 우리로부터 흘러갈 것입니다. 이 은혜와 은총의 복음을 소유함으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보호합시다. 우리의 모든 사고체계의 중심에 구원의 확신이 자리잡길 축원합니다.

<둘째, 투구로 써야 할 말씀-구원의 소망의 확신>

우리가 투구로 써야 할 구원의 두 번째 의미는 구원의 가치에 대한 소망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으로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와 비슷하게 성도가 영적 무장을 취할 것을 말합니다. 이 본문에서 호심경에 이어 등장하는 투구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라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둘러싸야 하는 또 다른 진리는 구원의 소망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임을 알고 그 확신 안에 거하며, 우리를 친히 신원하실 주님안의 소망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변해가도, 구원의 소망이 우리를 여전히 주장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땅이 아닌, 영원한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때로는 무기력해 보일 만큼 주장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며, 어리석어 보일만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진리를 사수하고 헌신하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서 승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산상수훈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 대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복음이 어떻게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였던 로마인들의 충격입니다. 콜로세움에서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놓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싸우고, 또 죽어가는지를 구경하던 이들은 이 죽음의 경기가 끝난 후 시체를 수습하면서 한 가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다리나 팔, 때론 얼굴이 찢겨져 죽어갔던 그리스도인에게서 두려움과 고통이 아닌 평안의 미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극한의 공포속에서도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저 능력은 무엇인가? 목이 잘리고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도리어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는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 어떤 분노와 억울함과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부활의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신원하는 날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나라의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이 말하는 부활의 소망을 붙잡읍시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영원한 나라에서 함께할 한 날을 위해 오늘도 우리에게 달려오고 계십니다. 구원의 소망으로 오늘의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냅시다. 구원의 투구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보호하며, 흔들리지 않는 평강안에 거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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