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를 취하라9-평안의 복음의 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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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0-15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평안의 복음 안에서 신분과 부르심을 회복합시다.>

지난 주일, 우리는 에베소서 6장의 평안의 복음의 신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옥에 갇힌 채 이 서신을 쓴 사도 바울은 쇠창살 너머로 로마 군사들의 무장한 모습을 보며, 성도에게 주어진 영적전쟁과 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고 굳건히 서기 위해 취해야 할 전신갑주를 하나하나 설명했을 것입니다. 복음의 신발 역시 그렇습니다. 사실 원문 그대로 본문을 보자면, ‘신’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며, 평안의 복음을 예비하여 발을 동여맬 것을 ‘신‘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보다 주안점을 둘 것은 평안의 복음과 바울이 보고있는 전투화, 즉 신발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로마 군사가 신는 전투화는 발바닥을 가리고 받쳐주는 밑창과 그를 발에 연결하여 덮은 샌달 형태의 부분과, 이 샌달형 신발이 벗겨지지 않고 발과 하나 되도록 발목과 정강이까지 조여주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발로 딛고 서야 할 바닥이 평안의 복음이라면, 이 밑창을 발목과 정강이까지 연결하여 하나되도록 졸라매는 끈은 완성된 전투화, 즉 신발 전체를 이르는 것으로, 신분과 정체성,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평안의 복음으로 발을 딛고 덮어 선 후, 그 끈으로 전투화의 모양새를 갖추어 신음으로, 복음안에서 정체성과 부르심을 일치시키라는 것입니다.

<완성적 복음의 네 가지 본질 -치유, 자유, 승리, 평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복음은 산을 넘어 전하고 싶은 기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오늘 에베소서 6장 본문이 말하듯 미리 준비하여 신을 신듯 발에 동여매기 위해, 우리는 복음에 대한 다음의 네 본질을 분명히 알고 소유해야 합니다. 먼저는 치유의 복음입니다. 이는 곧 살리는 복음을 말합니다. 사53:3~6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로 인해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상하시사, 주께서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살리고 치유합니다. 우리의 허물은 사하여졌으며, 우리는 나음을 받은 자 되었습니다. 오늘, 영육간의 모든 연약함과 질고가 복음안에서 끊어짐을 선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징계 받으시고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이 치유의 복음을 소유합시다. 살리는 복음의 능력안에서 회복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또한 복음은 자유입니다. 사61:1~3은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 받고, 포로된 자가 자유케 되며, 갇힌 자에게 놓임이 선포되는 자유의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어둠에서 자유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던 상처에서 벗어나며, 어둠에 끌려다니던 일들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자유의 복음은 율법이 할 수 없던 변화를 일으킵니다. 나의 노력으로 불가능했던 죄의 문제들이 끊어지고, 상처로 인해 쌓아졌던 벽들은 무너지며, 갇혀있던 한계에서 뛰어나오게 되는 자유가 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억할 것은 승리의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16장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을 말하며, 11절로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 합니다. 사탄의 머리를 박살낸 십자가를 가진 우리는 ‘이기는 자’입니다. 세상은 마귀를 강하고 두려운 존재로 그려놓고 있지만, 사탄은 이미 심판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우리는 어둠의 나라와 충돌하며 일어나는 모든 영적전쟁에서 우위에 있습니다. 다만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는 약4:7 말씀처럼 깨어 대적해야 할 뿐입니다. 어떠한 영적전쟁의 상황에서도 빌2:9~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 모두 예수의 이름에 무릎 꿇게 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진 복음은 평화의 복음입니다. 엡2:13~17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가 십자가로 화목케 되었다 합니다. 복음은 둘로 하나를 만들며 막힌 담을 허무는 강력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듯, 복음으로 깨어짐 가운데 화평과 화해를 가져오길 축원합니다. 평화의 복음은 나와 가정과 이웃과 세대간의 화합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복음 안에서의 정체성과 부르심 -택한 족속, 제사장, 나라, 백성>

살리고 자유케 하며 승리하고 화평을 이루는 평안의 복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이 복음으로 발을 디디고 또한 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동여매는 것, 곧 신발은 무엇입니까? 지난 시간 나누었듯, 신은 정체성과 신분,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우리의 신분과 부르심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결론짓습니다. 평안의 복음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 꼭 매어야 할 첫 정체성은 택하신 족속, 바로 아들됨 입니다. 가장 익숙한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됨을 머리가 아닌 전인격으로 온전히 깨닫는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이를 아버지라 부를 때, 사람이 아닌 하늘 아버지가 주신 신분으로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첫 걸음을 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며 화목케 하는 자임을 말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며, 땅이 하늘과 연결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는 전쟁의 신분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 곧 그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으며, 그를 전하는 정복자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주님의 통치가 나를 넘어, 내가 밟는 땅과 선포하는 일들 위해 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은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라 합니다. 우리에겐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이 땅이 아닙니다. 하늘의 소망을 회복합시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할 곳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평안의 복음은 살리는 복음이며, 자유의 복음이며, 승리의 복음이며, 평화의 복음이라 했습니다. 이 복음을 온전히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평안의 복음으로 발을 동여매어 신을 신을 때, 우리의 정체성과 부르심이 회복됩니다. 전쟁의 날에 달려가며, 능히 전투에 이기는 자로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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