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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의 갑옷을 벗자

왕하5:8-19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나아만 장군과 같이, 갑옷을 벗어 버리고 온전한 자유를 누립시다.>

3세대가 함께 한 이번 필리핀 선교 여행을 마치며, 주님께서 다시 새롭게 하신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는 교회의 화합과 가족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자뻘 되는 세대와 할아버지 세대가 모든 여정을 함께 하며 하나됨 뿐 아니라, 파송받은 선교사와 파송한 본교회가 가족으로 함께 뒹구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한 몸 된 교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선교가 보고해야 하는 사역으로 여겨졌던 모든 부담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하늘 가족됨을 누린 것입니다. 교회로 이루어지는 이 코이노니아 안에서, 주께서 주신 또 다른 소원은 온전히 자유한 예배와 삶입니다. 7시간동안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심령과 자유안에서 뛰며 찬양하는 필리핀 교회의 성도들을 보며, 우리를 모든 억압에서 치유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예배와 그러한 삶을 더욱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내면에 스며든 문둥병까지도 깨끗케하는 예배와 치유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나누는 본문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통해 하늘에서 오는 이 진정한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람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한 자로 여김받는 위대한 군대 장관 나아만은 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람을 구원했던 큰 용사로 추앙받으며 번쩍이는 갑옷과 무기를 소지하고 훈련된 호위병에 둘러싸여 위엄차 보이는 그의 겉모습과는 달리, 갑옷 안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종 삼은 한 소녀가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그를 고칠 수 있다 말합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이를 전하고, 왕의 후원을 받아 이스라엘로 가 엘리사를 만납니다. 나아만 장군에 대한 엘리사의 대우와 치유 방법은 그의 기대와 예상과는 크게 빗나갔지만, 결국 나아만은 깨끗케 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하는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는 삶의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 안에서 더 깊고 자유한 예배와 삶으로 우리를 이끌길 축원합니

<엘리사의 처방- 말씀은 말씀 그대로 온전해야 합니다.>

먼저는 엘리사의 태도와 처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아람의 왕이 보낸 편지와 함께 금과 은을 싣고 병거를 거느리며 위용으로 이스라엘 땅에 온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버선발로 뛰어 나와 성스럽고 위엄있는 방법으로 그를 치유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 문까지 온 나아만 장군과 그의 군대들을 직접 나가 맞이하지도 않고, 사자 한 명을 보내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말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대응일 것입니다. 나아만의 병을 치유해달라는 아람 왕의 편지를 읽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으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요청하는 아람이 실상 빌미를 잡으려 교묘히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 할 만큼 위험한 정치적 배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람의 군대 장관이 방문했을 때,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높은 자에게나 낮은 자에게나 동일해야 합니다. 입장에 따라 각색되거나 포장됨 없이 말씀 그대로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부딪혀 올 때, 그 자체로 순종하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이해를 따라 우리의 방식대로 해석한다면, 말씀이 말씀으로 역사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의 처방을 봅시다. 그는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요단강은 생명을 의미하며, 성경 전체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숫자 ‘7’은 온전한 충만을 의미합니다. 엘리사의 처방은 부족함 없이 온전한 충만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보혈과도 같은 생명의 강에 7번 잠기 듯, 우리가 온전히 죽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식을 버릴 때,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모든 이성과 경험을 십자가에서 못 박고, 말씀이 말씀으로 드러나며 역사하게 해야 함을 기억합시다. 내 마음이 상한다 할지라도, 내 이성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씀이 말씀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나아만의 태도-겸손하게 다시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나아만의 태도입니다. 그는 비록 병의 치유 때문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자였으나, 아람 왕의 편지와 금을 싣고 온 군대 장관으로 분명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엘리사의 집 문 앞까지 찾아가서 받은 대접이라곤 엘리사의 말을 전해들은 것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처방은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7번 씻는 것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온갖 전투를 치루어 내며 명예롭게 살아온 한 장군이, 이제 썩어가는 살을 감추어 왔던 갑옷을 수종들 앞에서 벗어버리고 작고 더러운 강에 7번이나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이 모든 상황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병이 낫기 위해 더 크고 어려운 일도 할 각오로 온 것을 상기시키며 엘리사의 말을 따르자 권면하는 종들의 말에, 그는 쉽지 않았을 선택을 합니다. 가난한 심령과 겸손한 마음으로 감추어왔던 치부를 모두 드러내고, 엘리사의 말 그대로 7번 강물에 잠기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이러한 순종의 태도가 있길 축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내 이성에 동의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분노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며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다시 살아나 말씀을 따라 반응하지 못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다시 기회를 주실 때, 엎드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가리워진 모든 것들이 벗겨지길 축원합니다. 회개는 후회나 자기 성찰이 아니라,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주장하였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으로 돌이킵시다. 우리를 자유케 할 주님의 치유를 바라봅시다.

<진정한 회개의 결과-치유와 응답을 넘어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만의 겸손은 그의 치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5~19절은 나아만이 깨끗하게 된 후,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이제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고백하며, 다만 아람 왕을 섬기는 그의 직분에 따라 아람 왕이 섬기는 신의 신당에서 왕과 함께 예식을 진행할 때 몸을 굽힘을 용서받길 구합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는 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방 땅, 이방 문화 안에서 사는 이방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이 임한 곳입니다. 아합 왕 옆에 오바댜가 있었듯, 느부갓네살 왕 옆에 다니엘이 있었듯, 바벨론의 시스템 한 가운데서도 이 모순적 삶 안에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여정은 그의 치유가 아닌 구원을 위함이었던 것입니다.회개가 치유에서 멈추지 않길 원합니다. 사울 왕과 같이 치유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도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한 주간 우릴 온전히 자유케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기도합시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어떤 것들이 있다면, 깨달아 알아지며 모두 벗겨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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