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명과 부르심3
사도행전 2:42-47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세기와 같은 마지막 때가 올 때, 사도행전적 교회로 승리합시다.>
“우리는 이 땅의 주님의 제자들을 복음서의 주님 곁에서 머무르던 제자에서 사도행전 이후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는 사도적 제자로 일으키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가는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TCC의 사명과 부르심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외치는 ‘사도행전적인 교회’는 94년도부터 성령께서 제 마음에 품게 하신 열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걸어온 이 긴 여정 끝에, 이제 우리는 그 정체성과 부르심을 따라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신 예수님과 같이, 다가오는 마지막 때는 처음 1세기의 확장과도 같을 것입니다. 오순절, 예루살렘에 부어졌던 성령의 역사가 이제 전지구적으로 열방을 움직이며 일어나는 바벨론에 맞서 종국적 부흥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부르심 받은 우리는 오늘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역사하시며, 더 강력한 기름부음으로 당신의 교회를 충만케 하십니다.
<TCC 3대 비전-본질적 교회의 회복>
우리의 사명과 부르심을 분명히 했다면, 또한 우리는 이를 구체적으로 이루는 TCC의 3대 비전을 통해 실제적으로 그를 행해야 합니다. TCC의 3대 비전 중 첫 번째는 본질적 교회의 회복으로, 다른 말로는 복음 중심의 교회, 또는 십자가 중심의 교회로 회복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태어나게 하신 말씀에 기록되어있는 교회, 곧 1세기의 교회로 본질적인 회복을 해야 합니다. 이는 영성, 라이프 스타일, 구조, 이 세가지 면이 모두 말씀을 따라 1세기의 모습과 형태로 회복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1세기의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복음 중심의 영성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삼천명이 주께 돌아오는 장면과 8장의 사마리아 성에서 일어나는 부흥과 10장의 고넬료의 집 위에 임하는 성령님의 사건에서 주목할 공통점은 복음이 복음으로 선포될 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바로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님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능력으로 증거하십니다. 세계적인 치유 사역자들을 봅시다. 그들은 특별한 치유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십자가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분명한 복음과 십자가의 신앙으로 영성의 중심을 잡았다면, 또한 우리는 1세기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회복해야 합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는 바로, 기도와 금식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의 기적과 이사들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기도와 금식외에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필요에 따라 기도없이 능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계속 바라는 것은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할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7장으로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으로 기도하고 금식할 때에 우리는 영이 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기도와 금식의 삶으로 영을 깨우며, 시세를 분별하고, 성령으로 능력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질적 교회의 회복에 있어, 교회는 1세기 교회의 구조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전에 모일 뿐 아니라 흩어져 집으로 모이는 교회로 존재했습니다. TCC가 셀을 중요시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삶을 서로 의탁하고, 변화되며, 그래서 함께 성장하는 하늘의 가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고,그렇기에 때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영적 가족을 경험하며, 진리안에서 서로 보호받고 의탁받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함께 자라날 수 있습니다. TCC의 모든 성도가 이 특별하고 놀라운 비밀안에서 보호받고, 함께 성장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모일 뿐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로 생명을 나누어야 합니다.
<TCC 3대 비전-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24/7 기도의 집의 회복>
TCC의 두번째 비전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24/7 기도의 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선교 중심의 교회라 할 것입니다. 오늘 열방 가운데 들리는 복음의 소식들에 주목하여 봅시다. 거의 모든 땅에 복음이 전해졌고, 소수 민족 몇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이러한 때 선교의 역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남겨진 선교지에서는 이미 열방에서 하나님이 새롭게 일으키시는 강력한 부흥의 소문과 역사들을 따라 그에 동참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히려 마치 사각지대와 같이 선교지에 고립되어 있던 선교사들이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기독교 언론에서 수차례 말했듯, 이제는 선교사의 숫자가 아니라 선교사들의 재배치가 필요한 때 입니다. 그리고 선교 전략의 재배치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남은 선교지의 블럭은 이전의 방식이 아닌, 이 시대에 성령께서 열방 가운데 행하시는 그의 방법을 따라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은 신부된 교회의 끊이지 않는 기도 소리를 통해 친히 당신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며, 이미 언어와 문화적 공감대의 형성이 준비되어 있는 현지 교회들과 리더들을 세우고, 그들이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음성을 듣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 선교는 기도와 예배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준비할 것이 예배의 선교입니다. 기도가 가장 강력하게 하늘을 움직이는 선교의 방법이라면, 또한 예배는 창의적 선교를 말합니다. 음악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모든 예술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노래와 춤과 그림과 드라마와 연극으로 우리는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집의 선교는 이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TCC 3대 비전-다음세대의 회복>
TCC의 마지막 비전은 바로 다음세대의 회복입니다. 이는 곧 성령 중심의 교회를 말합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맞이할 다음세대를 살리는 길은 오직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원수들의 거짓을 끊고, 중독에서 자유케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성령님이 필요한 시대가 이르렀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들이 성령의 사람으로 서며,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 되도록 교회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TCC가 섬기고 있는 많은 다음 세대 사역들과, 특별히 TCCS 대안 학교도 같은 맥락안에 있습니다. 이제 말라기 4장의 말씀처럼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되는 일을 성취합시다. 4세부터, 십대 청소년들과, 캠퍼스에 위대한 부흥의 세대들이 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비전들을 기억하며 그를 따라 함께 전진하길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과 부르심 안에 정렬할 때, 주님은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을 부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