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21 <주의 뜻, 정의와 공의>

2016-11-27

 

마태복음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산상수훈’ 이라는 예수님의 위대한 선포를 따라 그의 가르침대로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는 이제 산상수훈의 가장 많은 볼륨을 차지하고 있는 기도와 이 기도의 본으로 주께서 몸소 보여주신 주기도문을 깊이 묵상하며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가까운 오늘을 살아가며 확신하는 것은 ‘기도’ 라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 마지막 날을 살아내는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한글 성경으로,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 으로 번역된 눅18:7의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는 ‘Justice’ , 곧 정의, 공의로 쓰여 있습니다. 주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밤낮 부르짖을 것이나, 또한 주님이 오실 날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우리는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신앙의 두 부류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한 편에서는 내게 익숙하고, 편리하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신앙을 가르치는 그룹이 있을 것이나, 또한 신랑을 빼앗긴 과부와 같이 예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밤낮 기도하는 그의 신부들이 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는 신랑되신 주께서 오시는 날, 그가 찾으시는 신부로 서기 위해 말씀과 기도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딤전4:5은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지는가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라는 두가지의 신앙 행위를 통해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 없는 말씀은 지식에 지나지 않으며, 말씀 없는 기도는 진리와 깊이가 없는 영혼의 상태를 만들 뿐일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오늘 이 나라 곳곳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밤낮 기도하는 열정을 잃지 않은 교회들이 서길 축원합니다. 온전한 공의를 이루실 주께서 오실 때까지 밤낮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가 오늘도 멈추지 않게 합시다. 

  

<사랑으로 시작되어 이 땅에서 이루어진 공의, 우리를 구원한 십자가 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 전의 신비를 드러내는 에베소서는 1:3~5의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그 뜻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의 아들들로 예정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도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늘의 창조주의 기쁘신 뜻은 우리로 인해, 우리를 향하여, 우리를 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시작되어 하늘에서 이미 온전히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이제 이 땅에서 정의와 공의로 열매맺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구하시는 오늘 본문의 주님의 간구는,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그의 WILL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마6:33이 말하는 그의 “Righteousness" 로 이 땅에서 열매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어 그 사랑을 완성시킨 하늘과 이 땅의 공의입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는 단순한 윤리적 차원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지으신 창조주를 향하여 내가 그와 같이 되겠다는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는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짐승들과 같이 육체를 지니고 있고, 그 육체로 인한 정욕과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는 천사들도 놀라워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영원한 코이노니아를 누릴 그의 아들로 우리를 창조하사 변치않는 그의 의지로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아버지를 향해 우리는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1장의 말씀처럼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의 값을, 우리와 같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지우사, 십자가로 그의 공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의 WILL, 곧 우리를 향한 멈추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은 이 땅에서 그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의 Righteousness, 곧 그의 공의와 정의를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땅이 원하고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공의라 믿습니다.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은 공의는 또 다른 압제와 폭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이 땅에 필요한 공의는 바로 십자가가 이룬 공의입니다. 

 

<북한을 향한 아버지의 뜻은 한반도 위에 펼쳐질 공의와 정의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이 나라 곳곳에서 국민들이 소리 높여 요구하는 공의와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공의와 정의를 구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이루신 공의와 정의는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태초의 말씀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사, 그의 몸이 찔리고 찢겨지기까지 처절하게 우리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로써 이루어진 십자가의 공의는 우주를 경영하시는 창조주 아버지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되어, 그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문제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그것들을 없던 일처럼 덮어두자는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불법의 일들은 그에 상응하는 값으로 심판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시작점인 사랑과 오늘 이 나라의 상황은 무엇으로 대치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한반도 위에 진정한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또한 북한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북한 땅에는 마지막 때를 이미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정결한 신부들이 있습니다. 이 땅이 잃어버린 진정한 교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DNA가 주님의 뜻과 섭리안에서 보호받으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땅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북한 땅 위에 가득 부어지며, 그 사랑의 물결이 이 땅에까지 흘러 들어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된 새로운 나라 될 때, 이 한반도 위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그의 뜻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공의와 정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 위에 십자가의 정신이 흘러가길 기도합시다. 십자가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공의와 정의로 인해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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