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13 <나라가 임하시오며2>
마태복음 6:1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여기에 임하는 실재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도록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한 그를 구하신 주님은, 두 번째 간구로 그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와 같이 오늘도 내가 구하고, 또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와 함께, 20년이 넘도록 지치지 않고 나를 달려가게 하는 열정의 근원입니다. 사역을 막 시작했을 시기,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씨름하던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긴 싸움이 끝나는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영도 목사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같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삶을 마친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의 삶을 연모하며, 이 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길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생각이 오히려 나를 죽음의 영에 열리게 했으며, 당신의 나라가 죽어서야 가는 곳이 아닌, 오늘도 현존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나라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임하는 실재이며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주님의 기도를 우리가 또한 간구할 때,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 입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성령께 순복할 때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임하길 구하는 것임을 나누었습니다. 이는 곧 성령께서 다스리도록 순복되며 굴복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님과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령님은 방언이나 치유가 임하는 통로 차원의 영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주체이십니다. 에스겔 36장의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우리 안에 계셔 율례를 행하게 하시는 이도, 요엘서 2장이 예언한 남종과 여종 위에 부어지는 영도, 모두 성령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결론이 시작되는 61장을 봅시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구약의 정점에는 십자가가 아닌 성령과 그와 함께 역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사,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임한 주님의 나라는 성령께 굴복되어,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침노당하듯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고백해야 하는 것이 갈2:20 입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을 살아낼 때, 그의 통치와 다스림이 삶의 모든 영역에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복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드림으로, 내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영적 전쟁하며 전진할 때 빼앗겼던 주님의 통치, 그의 나라가 회복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간구하신 주님의 기도는, 바꾸어 말한다면 아직 그의 나라가 임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말합니다. 경배를 고백하며 구한 주님의 첫 간구는 그렇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 받는 그의 나라를 구하는 간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불법적으로 역사하는 사탄의 나라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구하는 기도는 경배와 맞물려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기도의 핵심이자 반드시 행해야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 신학의 정수라 하는 에베소서의 마지막 6장은 우리로 마땅히 영적 전쟁하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원하든 원치 않든 영적 전쟁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현상 너머, 위로 하나님, 아래로 마귀, 그리고 나에 대하여 그 이면에 역사하는 어떠함이 있는지 매 순간 깨어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아닌, 원수의 유혹과 공격으로 말미암은 것에 대해 대적하며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영전 전쟁인 것입니다. 똑같이 3~4대에 걸쳐 예수를 믿는 집안 중에도 어떤 가문은 풍성한 열매를 누리고, 어떤 가문은 도리어 믿음이 죽어가는 것을 봅니다. 극명하게 갈리는 이 두가지 현상의 중심에는 순교적 기도의 유무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순교적 기도의 삶을 심을 때, 그들의 가문에 영향을 주던 원수는 떠나가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의 열매가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영전 전쟁하여 기도할 때, 변화는 일어납니다. 이제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바라보며, 머리가 박살난 뱀의 꼬리를 잘라냅시다. 영적 전쟁하며 전진할 때 갈취당하였던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됩니다.
영적 전쟁의 세가지 기도-말씀으로, 선포하며, 대적하여 기도합시다. 사탄의 나라를 밀어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영적 전쟁하며 기도할 때, 우리는 다음의 구체적인 세 가지 전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강력임을 말합니다.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기도로 선포될 때, 그는 이 땅과 하늘을 움직이는 영이 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하며 기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선포입니다. 기도는 치성을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와 기도를 하는 우리를 분명히 안다면, 우리의 기도는 이방인이나 종교인의 기도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능력이 됩니다. 주께서 이루신 승리를 선포할 때 우리의 기도가 말이 아닌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또한 기억할 것은 구체적으로 원수를 향해 대적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 말씀같이 주님만이 우리가 복종해야 할 단 한 분되시며, 마귀는 대적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도 저항하려 한 마귀를 향해 우리가 마땅히 대적하며 꾸짖어 기도할 때 그들은 우리를 피하여 도망할 것입니다. 이 한 주간 하나님의 나라가 삶의 모든 영역에 임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선포로, 때로는 구체적으로 대적하며 기도함으로, 다시 임하는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