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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We)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영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께서 친히 보여주신 본질적 기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이 본문을 깊이 살펴보며 머무르는 6번째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온 세상과 모든 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이미 처음부터 끝을 계획하셨고, 그 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완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분명히 바라보며 이해할 때, 우리의 기도는 다른 스케일 안에 놓이게 됩니다. 온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사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우주와 역사의 경영 안에,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권세 받은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방식인 기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당면한 현실의 절박함과 필요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이상의 본질적 가치와 부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분명하게,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미 아신다 하였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고민하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눈이 땅의 것들에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가 구하는 바가 땅의 것들 뿐 일 것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영원한 하늘의 것들을 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을 움직이고 하늘의 뜻을 역사 가운데 이루어 드리는 위대한 기도를 회복하기 축원합니다. 하늘의 주관자의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이자 특권,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신앙의 개인적 덕목으로만 생각합니다. 기도는 아무도 없는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 관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러나 땅의 것에 매인 기도가 아닌 하늘에 속하여, 하늘을 여는 기도의 비밀에 “우리(WE)”가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선포하시던 주님은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며 가장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셨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모든 시간과 공간에 계시며 또한 우리 앞에 계신 창조자이자 주권자, 곧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으로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하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됨 안에 두었다면, 이제 “우리” 안에 들어갈 때 입니다. “우리”를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을 알며 주기도문을 이해할 때, 하늘에 속한 우리의 기도가 그의 나라를 열어 이 땅에서 풀어내는 역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WE)의 첫번째 의미 -구원

“우리”의 첫번째 의미는 구원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 않습니다. 이는 곧 아무나 기도할 수 있지 않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는 그가 “우리”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임 안에 있다고 해서 “우리”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자 검증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되지 않은 내가 부르는 하나님은 어딘가 있는 천지신명 같은 존재이거나, 내가 만들어낸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아닌, 내가 붙들고 있는 갈망이나 신념이나 미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나의 하나님이라 불려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는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주를 고백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여 이제 내가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기를 결정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갈라디아2:20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는 위대한 사도 바울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거듭난 모든 자들의 고백이자, 우리 믿음의 시작입니다. 이 분명한 신앙고백은 “우리” 안에서 참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이제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는 은혜가 “우리” 되게 합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자라 할지라도,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이 비밀 안에서 내가 죽지도 않았고 그래서 내 삶의 주인이 여전히 나라면, 오늘 내가 부르는 나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닌, 내가 자아내고 연출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갈2:20을 기억합시다.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 내가 살아날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올라, 다시 죽기로 결정하고 요청하는 분명한 신앙의 고백! 이것이 우리가 가진 구원이며, 우리 되어 아버지를 부르는 특권이자, 기도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우리(WE)의 두번째 의미 -교회

“우리” 는 또한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이제 다시 태어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곧 내가 죽고 우리된 고백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통해, 한 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 교회로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마16:13~19 본문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누구라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답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혈육이 아닌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말미암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가 죽고, 우리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서 일어난 기적이며 신비입니다. 이 신령한 역사를 경험한 자들, 곧 우리 안에 내가 있고 나이지만 우리로 존재하는 부르심 받은 자들이 교회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주님께서 선포하신 위대한 교회의 권세를 기억합시다. 하늘 아버지를 부르는 우리의 기도는 그의 나라를 움직입니다. 우리로 부르심 받은 교회의 기도를 알며 그를 행할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누리는 은혜가 더욱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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