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성령세례
사도행전 1:3~5, 8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음서의 머무르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보내심 받은 제자들
사도행전 1장은 먼저 쓴 글과 이제 쓰는 글에서의 제자들을 구분하며 시작됩니다.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예수님과 함께 걷고, 먹고, 자며, 주님과 동행했던 복음서의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한 영광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쓰는 글에서, 그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면서도 여전히 땅의 것들을 추구하며 누가 더 높은 자인지 싸우던 이전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또 다른 하나님의 아들의 현현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당신 곁에 머무르던 제자에서 보내심 받은 제자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음란과 인본주의와 샤머니즘이 똘똘 뭉쳐 우리의 신앙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이 때, 골리앗 같이 거대한 이 시대의 영성을 쓰러뜨릴 수 있는 다윗으로 서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삶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성, 사도적 제자도가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인의 삶은 실존하시는 주님과 그의 권능을 드러내는 생명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을 여는 기도는 성령세례로 시작되어, 성령충만으로 지속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이 영광스러운 기도를 시작하며 지속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당신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기까지 제자들이 먼저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기도는 성령님이 부어질 때 시작됩니다. 이는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라 고백한 것은 이미 성령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고백한 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공포하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침례받듯이, 성령의 세례도 이미 영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어, 물 속에 잠기듯 내 영뿐 아니라 혼과 육을 성령안에 온전히 잠기게 하고 그가 나를 소유하시도록 붙들리는 일회적인 체험입니다. 전인격에 성령이 부어지는 성령세례가 임할 때, 자연계에 속한 우리가 영계와 공존하며 하늘을 여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또한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 입니다. 성령세례를 경험한 에배소 교회는 성령충만을 말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일회적 사건으로 성령세례를 경험했다면, 이를 현재형으로 지속하는 과정이 성령충만입니다. 분명히 알게든, 때로는 모르게든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육으로 영의 일을 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육과 혼과 영이 잠기며 이성적 판단과 감정과 의지까지 성령님께 굴복될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적 제자는 “하나님 나라”에 속했으며, 또한 그를 확장시키는 자입니다.
복음서의 주님 곁에 머무르던 제자들의 키워드가 “십자가”였다면, 사도적 제자도의 키워드는 “하나님의 나라”라 할 것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어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순간까지 나누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보내심 받은 제자들을 통해 전파되며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보며, 확장시켰듯이, 우리 역시 보내심 받은 자 되어 새로운 정체성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가 의미하는 바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는 영원하며 초월적인 영의 세계로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마쳤을 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둔 자들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초월적이며 영적인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며 세상과 우리가 구별되는 본향의 장소인 것입니다. 이제 완전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했다면 또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하며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연합되어,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역사 위에 임하는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그것입니다. 어떤 시간과 장소와 영역 위에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임할 때, 우리는 또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장 이 땅에서부터 하늘의 영원한 나라로 데려가지 않으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며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며 그를 보이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저주로 이 땅을 묶었던 사탄의 나라를 박살내고, 주께서 다스리시며 그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풀어내는 것입니다. 죄의 저주로 말미암은 사망 권세를 끊어내는 이 역동적인 주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곳에 모인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 되길 축원합니다. 보내심 받은 사도적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운반하는 자입니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으로 시작된 주님의 공생애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맺어집니다. 주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서야 갈 먼 곳 천당으로가 아닌, 지금 우리 삶에 임하고 역사하는, 실존하며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로 선포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영원 전부터 있었으며, 오늘도 침노받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이를 보며 경험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또 한가지는 성령님 입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으로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며 그를 증거하고 운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령세례란 성부, 성자, 성령 중 삼위 격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전인적으로 부어지는 영적 세례를 말합니다. 이는 구원이 아닌 구원받은 자들의 증표이며, 인침입니다. 성령세례가 임할 때,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으로 새로운 하늘의 성품과 영적 기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전인격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침노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치 구원받은 자가 신앙을 공포하기 위해 물속에 잠기어 침례를 받듯이,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에 온전히 잠기게 되는 일회적인 경험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어떤 이는 극적인 현상 가운데 이를 경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홀연히 임한 성령세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세례가 복음서의 머무르던 제자와 보내심 받은 사도적 제자의 가장 큰 경계선이란 것입니다. 성령님이 부어져 우리를 채우고 흘러 넘치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안에 임하며,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성령충만 입니다. 일회적 체험으로 성령세례를 경험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상태를 유지하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으로 나의 자아는 죽고 성령님께 잠기운 성령세례의 상태를 유지시킬 때, 우리의 삶이 주님의 통치안에 있게 됩니다. 이제 내가 아닌 성령의 다스림을 따라 사는 자,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사도적 제자로 설 때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적 제자는 성령세례 이후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성령을 따라 성령으로 사는 자라 할 것입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모든 시간과 공간와 영역 위에 주님의 왕권이 역사할 때, 우리는 이 땅에 임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침노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들의 삶을 통해 이 땅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구속과 주권이 역사와 가치와 체제와 땅들 위에 임하여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하기 위해 우리를 사도적 제자로 불러내고 계십니다. 엡5: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명하심을 기억합시다. 현재형이자 수동형, 복수형, 명령형의 문법을 모두 사용하여 써진 이 문장을 보다 정확하게 다시 표현하자면, “성령께서 너희를 충만하게 하시도록 내어드리라”는 명령일 것입니다. 우리는 천당에 가려고 모이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영원한 나라에 속한 우리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자 되어야 합니다. 먼저 쓴 글의 제자들이 보내심 받은 제자들로 변화되고 성장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주체되신 성령께서 내주하실 뿐 아니라 충만하심으로 손을 얹어 축사하고, 치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자 되길 축원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위대한 나라에 속하였을 뿐 아니라, 그를 세상 가운데 증거하는 사도적 제자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