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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영을 부으소서

누가복음 22:39~44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와 예배로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의 나라가 실현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즌 진중하게 이를 되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은 학습이나 연구나 봉사나 자기 성찰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본질을 위한 과정이자 필요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과 우리가 사랑하며 교제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영원한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동행인 것입니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의 삶을 기억합시다. 에녹이 65세에 낳은 므두셀라란 이름은 그가 죽을 때에 세상이 심판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엔타임적 삶의 계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의 인생 가운데 극단적인 영적 변화가 시작되었고,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며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삶을 살아냄으로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종교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 기도와 예배가 있습니다. 기도와 예배는 성도의 삶의 본질입니다. 주님의 삶 역시 그러했습니다. 강렬한 햇볕으로 인해 오침을 가져야하며 하루 활동량이 많지 않은 중동지역에서, 예수님은 전도, 구제, 치유 사역 이외에 습관에 따라, 밤이 맞도록,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의 3분의 1에 가까운 시간을 기도에 쓰셨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죄의 저주를 끊고 사탄의 매임을 풀어 열방을 바꾸고 민족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며 사탄의 나라가 박살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주님은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며, 그를 살게 하는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기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삶의 본질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여는 기도는 성령세례로 시작되어, 성령충만으로 지속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이 영광스러운 기도를 시작하며 지속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당신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기까지 제자들이 먼저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기도는 성령님이 부어질 때 시작됩니다. 이는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라 고백한 것은 이미 성령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고백한 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공포하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침례받듯이, 성령의 세례도 이미 영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어, 물 속에 잠기듯 내 영뿐 아니라 혼과 육을 성령안에 온전히 잠기게 하고 그가 나를 소유하시도록 붙들리는 일회적인 체험입니다. 전인격에 성령이 부어지는 성령세례가 임할 때, 자연계에 속한 우리가 영계와 공존하며 하늘을 여는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또한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 입니다. 성령세례를 경험한 에배소 교회는 성령충만을 말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일회적 사건으로 성령세례를 경험했다면, 이를 현재형으로 지속하는 과정이 성령충만입니다. 분명히 알게든, 때로는 모르게든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육으로 영의 일을 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육과 혼과 영이 잠기며 이성적 판단과 감정과 의지까지 성령님께 굴복될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기름부음과 영적전쟁 할 수 있는 기도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이방인이나 종교인과 같지 않은 본질적 기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한 구해야 할 것은 기도의 영입니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기도의 기름부음과 돌파하도록 기도를 돕는 천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2절을 주목하여 봅시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 사명을 앞두시고 마지막 씨름의 기도를 하시는 주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백하십니다. 기도의 기름부음이 오면 내 뜻이 아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이는 곧 중보의 영입니다.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도,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면 지체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육의 기질과 의지로 기도할 때는 나의 상황을 볼 수밖에 없고, 내 중심으로 기도가 흘러갈 수밖에 없으나, 성령께서 이끄실 때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의 나라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 기도가 중요합니다. 처음 방언의 기도는 회개와 상처, 혼적 매임들을 푸는 중심의 기도이지만, 이것이 깊어지면 장래 일을 말하기 시작하며, 더 나아가 깊은 경배 가운데 하늘을 보게 되는 신령한 삶으로 연장됩니다. 두번째 기도의 영은 실제로 기도를 돕는 천사를 말합니다. 앞서 말한 기도의 기름부음이 우리로 본질적 기도에 들어가게 했다면, 두번째 기도의 영은 돌파할 수 있는 기도의 영, 곧 전쟁하는 영입니다. 본문 43절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였다 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가 성령이 친히 하늘의 것을 구하게 하는 기도를 넘어서 영적 막힘을 돌파하는 단계까지 나가기 원합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야곱과 밤이 새도록 씨름한 천사가 누구겠습니까? 우리의 상황을 돌파하게 돕는 기도의 천사가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10장의 바사 왕국의 왕들과 미가엘의 영적 전쟁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일을 막는 원수들을 향하여 함께 전쟁하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돕도록 주님의 주권 아래에 파송되는 기도의 영을 구합시다. 왕하 6장의 엘리사를 둘러싼 불말과 불병거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듯,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자리에 기도의 영이 임하며, 기도의 영과 함께 돌파하고 전쟁할 수 있는 깊은 기도로 들어가길 축원합니다.

어떻게 기도의 영을 받을까요?

주님은 우리가 당신께서 기도하셨듯 다음같이 기도할 때, 기도의 영을 보내십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을 기도할지라도, 나의 비지니스가 성공되게 해달라는 기도와 이를 통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공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구하는 소원. 이는 주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오게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도입니다. 또한 영적 전쟁하는 기도에 들어갈 때, 기도의 영이 보내집니다. 사실상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는 간구여서는 안됩니다. 산상수훈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바라보며 대적을 향하여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기도의 영은 끈질긴 기도위에 임합니다. 하늘에서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한 다니엘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다니엘이 멈추지 않고 21일동안 씨름하는 기도의 자리를 지킬 때, 돕는 천사를 파송하셨습니다. 이 시간 모든 이에게 기도의 영이 부어지기 축웝합니다. 본질적 기도를 회복할 때, 우리 삶 위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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