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2_천국의 문지방을 넘다
*이해성구- 눅 18:9~14. 고후 6:10
마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 팔 복
“오늘 나는 생명력 있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다양한 가치관으로 저마다 다른 신앙의 방점을 찍는 이 시대,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이 살아내야 할 삶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특별히, 팔복은 산상수훈의 핵심을 압축한 여덟 진리이자, 성도의 여덟 정체성이며, 그 정체성을 살아내는 여덟 가지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복부터 여덟 번째 복에 이르기까지 한 계단씩 올라가며 구원을 완성해가는 절대적 전제 조건이자 승리의 비결이며 영적 성장의 결과인 것입니다.
2. 첫 번째 복,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아. 천국이 너희의 것이다.」
1) 제1복은 구원론, 칭의론의 핵심 진리를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진정한 복이 ‘구원’에서 시작됨을 말합니다. 육신과 영이 분리된 순간 지옥으로 떨어져버린 부자는 그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인생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을 받은 복, 그래서 구원이 시작된 제1복이 진정한 복입니다. 이 첫 복이 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질 가짜 복일 뿐입니다.
2) 제1복은 ‘죄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합니다.
제1복이 주는 정체성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이 복을 통해 ‘나는 철저하게 죄인이구나.’라는 자기 발견을 시작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런 심령의 가난함에 대해, 눅18:9-14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태도를 비교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 의로운 자임을 감사드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가슴을 치며 죄인인 자신에게 긍휼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 두 사람의 예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스스로 의인이라고 한 바리새인과 구원을 절대적으로 구한 세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를 향해 있습니까?
3) 제1복의 가난함은 하나님만 붙잡는 영적 파탄자의 가난함을 의미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가난함의 원어는 ‘프토코스’로서, 이는 상대적 빈곤이 아닌 완전한 가난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제1복의 가난함은 주님이 아니면 결단코 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영적 파탄자의 복인 것입니다. 주님은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없이도 잘사는 죄’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난함의 반대인 ‘부요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부터 힘과 자신감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리를 사람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 결국 나의 의를 주장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죄’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기드온도, 사도 바울 역시도 하나님과 대면한 후 자신이 죄의 저주로 멸망할 죄인임을 고백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나의 무능함과 무력함, 죄에 대한 절대적 실패를 깨닫는 은혜가 우리를 살리는 복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사6: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삿6:5(기드온)
3. ‘심령의 가난함’의 복이 임한 삶의 태도와 결과
1) 겸손합니다.
겸손은 일부러 취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겸손은 심령의 가난함의 복을 받은 자들에게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삶의 태도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세상에서는 높이 평가될 자신의 출신 성분과 지식, 영적 깊이마저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2) 자기부인이 시작됩니다. (고전15:31, 고후11:30)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한 사람은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거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철저히 부인합니다.
3) 하나님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가집니다. (고후6:10)
주님이 아니면 실패뿐임을 고백한 자들에게는 주님 안에 있는 자유와 평강이 임합니다. 나의 실체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기에, 그러한 우리를 자녀삼고 소유 삼으신 하나님 안에 있는 평강과 죄에서 벗어난 자유가 삶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속한 우리에게 어떤 수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주께서 이미 이기셨습니다. 주님께 의탁된 우리는 모든 저주로부터 자유하며 평안합니다.
4) 구원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집니다. (눅23:43, 마25:34)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을 것이며,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즉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감추어둔 깊은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누구도 의인이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의 복을 받은 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의 은혜를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 나라의 성도인 자신의 새로운 신분과 위치와 부르심 안에 견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4. 결론
심령의 가난함의 복은 천국 시민이 되는 첫 번째 절대적 조건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 파산을 선언한 이들은 매순간 하나님을 갈망하며 의지하는 복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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