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과 성령

행2:30~36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부활의 기쁨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각각 교조의 탄신일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교조가 죽었다가 부활한 날을 기리는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사망을 이기신 부활의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마태복음 27장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에게이로’란 단어로 표현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나 나사로처럼 잠시 회생한 ‘아나스타시스’와 구분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영광의 부활이 우리에게도 약속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토록 코이노니아를 누릴 것입니다.


부활의 중요성 –첫째, 그리스도 되신 예수 이름의 공포

부활은 예수님의 입장에서도 중대한 사건이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약속하신 그리스도 되심이 증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합당한 자의 증거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설령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겠다고 자원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사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약속을 마침내 보이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처럼 희게 할 메시아의 역사가 선포된 것입니다.


부활의 중요성 –둘째, 영원한 부활에 참여함

두 번째로, 우리의 입장에서 부활이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도 영원한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부활 생명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1:20).” 예수님을 일으키신 부활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고백한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셨을 뿐 아니라, 주님과 연합한 우리에게도 부활의 생명과 소망이 역사하게 하십니다. 주 예수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부활에 동참할 것입니다.


부활의 중요성 –셋째, 모든 사망 권세가 깨어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부활이 중요한 세 번째 의미는 부활 생명으로 인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려는 사망의 저주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6장에서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원수 마귀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들의 권세를 발휘할 수 없던 우리가 부활의 생명과 합하여지면서 왕 노릇 하던 악한 자를 꾸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작은 자라고 느껴질 때, 부활의 생명과 능력이 내 안에 임하였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부활을 선포하고 부활의 능력을 행하도록 택함 받은 자입니다.


세 가지 부활 신앙

성도가 가진 세 가지 부활 신앙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부활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선인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악인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끝나고 나면, 모든 이가 백보좌의 심판 앞에서 각자의 행한 바에 따라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두 번째 부활 신앙은 부활체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고 나서 혼령처럼 영계를 떠다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 이후 입게 될 부활체는 이 땅에서 보고 들었던 것보다 더 생생하게 주님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는 신령한 몸입니다. 그렇기에 천국에서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누릴 것이고, 지옥에 간 영혼들은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 이후 더 극명하게 영광과 어둠이 나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부활 신앙은 ‘더 나은 부활을 구하는 것’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고전15:41~42).” 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영원한 그 곳에서 누릴 더 좋은 부활을 향해 우리의 삶을 쌓아가는 부활의 신앙을 사수하고 회복합시다. 우리가 경험할 부활은 이 땅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실제적일 것입니다.


부활의 두 증인 –우리와 성령님

오늘 본문의 결론은 ‘증인’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예수님을 보았던 1세기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목도했던 제자들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듯이, 눈으로 본 것보다 분명하게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의 증인이 된 우리가 더 복된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부활의 선포자들입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듣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자들과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속이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28:13~15).” 원수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독교가 만들어낸 신화나 전설이라 속이며 지금도 복음을 가로막으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번째 증인과의 동역이 필요합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5:32).” 성령님도 예수님의 증인되십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사도 바울도 성령님과 동행하고 동역함으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아닌, 성령님을 의지했고 성령님과 함께했습니다. 우리의 선포가 제재를 당하고 사역이 방해받을 때,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며 동역해주십니다. 병자가 치유받고, 귀신이 쫓겨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사탄이 심판받는 모든 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동역할 줄 아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 시대, 성령님과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교회들이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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