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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텐트 통해 주가 하시는 일 (대상13:9~14)

타작 마당의 의미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사울의 왕조가 끝나고 다윗의 왕조가 일어서는 대전환기의 날, 웃사가 죽고 다윗이 회복되는 오늘 본문 속 사건의 무대가 바로 타작마당입니다. 성경에서 타작 마당은 보통 세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심판의 때’입니다. 침례 요한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실 예수님을 소개하며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손에 키를들고자기의타작마당을정하게하사알곡은모아곳간에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두 번째로, 타작 마당은 추수의때를상징합니다.마지막때,우리는가장위대한추수를보게될 것입니다. 오늘도, 한국의 상황과 상관없이 열방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주목할 것은 마지막 때 추수는 위대하면서 두려운 일들이 함께 일어남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을 옮기시는 크심으로 당신을 열방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세상 한 편에서는 어느때보다사악한어둠의일들이벌어질것이지만,한편에서는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많은 영혼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타작 마당은 이러한 역동의 시기에 일어날 영적 전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즉 타작 마당에 이르렀음은 심판과 추수, 그를 위한 치열한 영적 전쟁의 때가 이르렀음을 말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때를 분별하며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고 동역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은 마지막 때 승리할 교회의 모습으로 1세기 교회를 본으로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함께 삶을 살아내는 하늘의 가족이 됩시다. 무엇보다 모일 때마다 힘써 기도합시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신부된 우리에게, 말씀에 기록된 1세기 교회가 아닌 또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습니다. 열방 중에 다시 일어나고 있는 다윗의 장막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잠들었던 주님의 신부들이 깨어나며 교회가 회복될 것입니다.

웃사의 죽음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때를 전혀 몰랐던 웃사는 당시 이방인들이 신상을 나르는 방식대로 소가 끄는 달구지에 하나님의 법궤를 싣고 옮기다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웃사의 이런 모습은 세속주의를 상징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집안에서 자라면서도 세상의 문화에 더 익숙했고, 그 세속주의가 믿음을 종교화 되게 했습니다. 세속주의는 오늘날도 성도들을 오염시킵니다. 세상이 쫓는 성공이 믿음으로 쟁취해야 할 성공이라고 속이며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게 하고, 이런 가치관이 인본주의가 되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령한 부적 정도로 생각하게 합니다. 특별히, ‘전통’의 모습으로 우리를 종교화 시키는 세속주의에 대해 깨어있길 바랍니다. 보고 들으며 익숙해진 전통이 아닌,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배어있던 전통과 종교의 틀이 깨어지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길 축복합니다.

다윗의 회복 다윗의 장막이란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기 직전,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감격과 흥분의 감정을 뒤로하고, 주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식양에 따라 법궤를 레위인의 어깨에 메어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회복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먼저는 말씀의 회복입니다.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세상의 많은 말들이 교묘하게 진리를 왜곡할 것입니다. 어둠은 진리를 가리고 비진리가 믿음의 척도가 되도록 성도들을 속이려 들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세워, 세상의 속임과 혼미한 꾀임들로부터 삶을 보호하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의 회복은 부르심의 회복을 뜻합니다. 부르심을 모르는 성도는 신앙이 깊어지기 어렵습니다. 인생의 향방이 불분명하며, 막연한 천당 소망을 품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 생활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분명한 부르심을 발견하며, 주님이 주신 소원을 몸된 공동체와 함께 이루어나가길 축복합니다.

교회의 완성,한 새사람의 회복 지금,이땅에완전한교회는없습니다.교회의구조나예배형식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교회가 완성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교회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의 구원과 유대인의 구원을 구분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가 하나 되는 일이, 에베소서 2장이 말하는 한 새 사람의 회복입니다.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윗의 장막 안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 이루어졌던 연합의 예배처럼, 주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우리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십자가 안에서 하나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종국적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기까지, 주야로 기도하는 파수꾼의 부르심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사 62:7.)”

끊이지 않는 기도의 불로 선교하는 뉴 모라비안 공동체 더크로스처치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이 몸에 끊이지 않는 기도의 불과 선교의 열심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 없이는 선교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제, 21세기 ‘모라비안 공동체’로 가야 합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끝까지 선교하기 위해, 자급자족 하며 기도와 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한 두 사람의 후원이 끊어져도 기도의 능력 안에서 선교할 수 있는 공동체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수백년간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야 할 길을 찾게 해주셨고,이제더분명히보이시며한걸음씩이끌어주고계십니다.이여정 중에, 기도의 집을 오해하게 만들고 거짓으로 순종의 마음을 꺾이게 하는 공격들이있을것입니다.그러나우리가믿음안에굳게서서전진할때, 얼어붙어가는이땅을녹일불이필요한자들이이몸에부어진기도와 예배의 불을 담아 갈 것입니다. 21세기 모라비안 공동체로서, 끊이지 않는 기도와 예배의 불이 열방에 전달되게 합시다. 21세기 진젠도르프가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거룩과 존귀함으로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교회 위에 하늘의 권세가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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