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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십자가와 성령2

마5:20,4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산상수훈의 결론, 십자가와 성령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산 상수훈의율법서가도전하는두번째결론은하늘아버지와같은온전함입 니다.오른뺨을치는자에게왼뺨을돌려대고,오리를가게하는사람과십 리를 동행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이 초월적 온전함에 과연 우리가 이를 수 있을까요? 산상수훈의 말씀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앞서 본문 21~37절의 말씀으로 우리는 ‘완전한 의’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예수님 은육신의정욕과안목의정욕과이생의자랑에대한율법의기준을바꾸셨 습니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구약의 율법에서는 살인해야 심판 받았으나 이 제는형제에게노하는자가심판받게됩니다.음욕을품고여자를보는것으 로 이미 간음하였고, 자신의 힘과 의지로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러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아니 고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새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의’를 이루는 단 하나의 방법,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산상수 훈은 ‘온전함’에 이르는 길을 또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온전함 온전함은 ‘샬렘’, ‘타밈’을 번역한 단어로, 헬라어로는 ‘텔레이오스’라 합니다. 이말은결여된것이없고흠이없는상태를뜻합니다.그러나본문의온전함 이 율법이나 도덕적 기준에서 완벽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상황과 상태가 온전해야 함을 말합니다. 즉, 도덕 적으로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하나 님의 성품처럼 그러한 마음과 인격에 연결되고 관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온전함이란 텔레이오스의 적용을 ‘하나님의 성품에 지배 되어라.’, ‘하나님의 온전하심 안으로 들어오라.’고 풀이합니다. 더 쉽게, 우리 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 안에 있게 하라. 성령 충만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성령충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은 미래 완료형 수동태 시제로 표현되 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임하시고 우리를 사로잡길 기뻐하십니다. 그 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주님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직 성령의열매는사랑과희락과화평과오래참음과자비와양선과충성과온 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 충만할 때,사랑하고기뻐하며오래참고온유하며절제할수있습니다.이아홉열매 가 마태복음 본문의 극단적 용서와 사랑과 구제로 압축됩니다. 원수를 용서 하고 사랑하며 삶을 나누어 구제하는 온전한 삶,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 거 할 때 가능합니다. 성령충만이 아버지와 같은 온전함을 살아내게 하는 능력 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질과 성격과 삶을 어거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립 시다. 십자가가 우리를 완전한 의인되게 했듯이, 아버지와 같이 온전케 되는 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성령님과 동행하면 됩니다. 그 리스도인에게 성령충만은 선택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약의 율법을 대신한 신약의 율법이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기에, 성령충만하라 명하셨습니다. 우 리는 아버지와 같이 온전한 자로 세상에 세워졌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예배 당에 와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 해야 합니다. 주님의 충만하심 안에 거하고자 몸부림 칠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성경은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 은 불가능한 것을 행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임하여 역사하는 기적,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을 위한 세가지 –회개, 기도와 말씀, 아버지께 간구 결론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요? 죽어서나 가는 천당 이아니라지금내삶과내성품이하나님의통치안에서다스림받는하나 님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는 ‘회개’해야 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 수님의 첫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를 여는 회개였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회개는 단회적이고 운명적인 회개와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회개로 나누어집니다. 단회적 회개가 곧 회심입니다. 내 마음과 뜻대로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던 삶에서 완전히 길을 바꾸어, 예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목적이 되고, 예수님이 삶의 주관자가 되 는 회심의 사건이 곧 단회적, 운명적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신앙의 출 발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러한 회개의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며 인간적인 종교활동을 할 뿐입니다. 예 수님을 구원자와 주로 고백해야 진정 회개한 것이며, 진정 회개해야 성령이 임하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 각예수그리스도의이름으로세례를받고죄사함을받으라그리하면성령 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이 부어집니다. 회개해 야,하나님나라에속할수있으며성령님의임재안에서주님과동행할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성령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성령 님이 임하시는 우리 자신을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지성소로 가기 위해 마당을 지나 성소로 들어가듯, 마당에서 죄를 회개한 자들은 성소, 곧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 르되우리가하나님의말씀을제쳐놓고접대를일삼는것이마땅하지아니 하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행전 6장에 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가장 중요한 사역의 자리로 여겼습니다. 또한 디 모데전서 4장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합니다. 말씀 을 읽고 기도하며 거룩해진 심령위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십니다. 세 번째 로 성령 충만하기 위해 아버지께 간구해야 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이름으로보내실성령그가너희에게모든것을가르치고내가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 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3:34).” 성 령을 주시는 주체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 을 한량없이 부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성령을 구하는 우리에게도 충만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신앙의 목 적도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세상을 이기는 새 율법이 지켜지며, 하 나님의 나라가 증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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