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부흥의 여정 (히13: 8)

믿음의 눈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자, 미국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의 현장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청교도들이 도착한 플리머스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성조기도 보였고 청교도들이 몸을 실었던 배의 모형도 있었지만, 낭만적이라기보다 쓸쓸해 보였습니다. 1620년,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이미 도시화가 잘 형성되었던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보다 훨씬 퇴보된 생활양식으로 터전을 가꾸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용기가 미국이란 나라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플리머스 지역의 교회에서조차 동성애 깃발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은 주일 예배를 드리는 대신 각종 동호회에 참여하며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던 하버드 대학은 어떨까요? 자유주의 신앙과 인본주의 사상에 잠식당해 건강한 신학교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이런 안타까움은 1600년대 후반, 미국을 건국했던 리더들의 한탄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백년 전부터 미국은 영적 침체기를 맞이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어두워져가는 나라로 인해 근심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메마른 그 땅에 생기를 불어오게 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교회를 깨우고 미국을 회복시켜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도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길 원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오늘을 바라볼 때 정치적 분열과 세속화된 사회, 세대간 극렬한 갈등 속에서 이 땅이 하나님의 부흥을 맞이할 수 있을지 소망을 품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와 티모시 드와이트 조나단 에드워드는 13살에 예일 대학에 들어간 인재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미국을 위해 기도하며 부흥을 구하는 목회자였고, 그는 어릴 때부터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영적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의 현실을 지켜봤었습니다. 그럼에도 조나단 에드워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부흥을 향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29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청빙을 받게 되고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전역에 걸쳐 계몽주의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당시, 하나님을 부정하던 문화 속에서 조나단의 선포는 불이 되어 던져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마을을 덮기 시작했고, 이 불이 번져 미국을 깨우는 1차 대각성 운동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곧이어 일어난 독립전쟁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뚫어낼 수 있었습니다. 예일대 총장을 역임했던 티모시 드와이트도 당시 부흥을 운반한 사람 중 한명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책들이 미국으로 유입되며, 많은 지성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이론에 매료되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설립되었던 예일 대학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캠퍼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조소거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티모시 드와이트는 바로 그러한 때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 계몽된 지성인의 증거라고 말하는 캠퍼스 안에서, 드와이트 총장은 이성주의 책들과 성경을 비교해서 읽어주며 논리적으로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앞서 말한 조나단 에드워드입니다. 티모시 드와이트 총장이 변증법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2년이 넘어가자 더 많은 학생들이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3년이 넘어가자 예일대의 2/3가 회심을 했습니다.

D.L. 무디와 예레미아 랜피어 앞서 두 사람이 지성인이라면, 무디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구두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난 무디는 교회와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주일학교 교사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무학의 사람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덥썩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무디에게 영혼들을 전도해서 새롭게 반을 만들어 맡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무디는 10명의 아이들을 전도해서 새로운 반을 만들었습니다.그리고그렇게한명두명모인영혼들이일년만에 천오백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무디는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부흥을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1세가 되었을 때 고향 땅에 신학교를 세워 다음 세대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불을 받고 무디의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2만명의 선교사들이 열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 중에 조선 땅에 들어온 선교사만 2천명입니다. 또 다른 기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레미아 랜피어는 맨하탄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다, 정오 기도회에 대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을 기도의 자리에 초청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기도의 자리를 지키자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하게 시작된 정오 기도회에 하나님의 불이 붙기 시작했고, 맨하탄을 오가던 선원들마저 회심하며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오 기도회의 불은 미국 80개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기도회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 중 한 신학생이 브루클린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생명의 물줄기를 끊임없이 흘려보내시며 역사를 운행하십니다. 복음은 오늘도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과 하나님의 때 미국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의 현장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란 것을 다시 확신했습니다. 미국이 영적 침체기에 빠질 때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을 세우시고 생기를 불어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 대한민국도 믿음으로 출발하게 하시고 위기의 때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세워주셨습니다. 다가오는 7월 27일은 대한민국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산의 날에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물으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북한 땅을믿음으로품을영적준비가되어있습니까?이교회에나라와민족을 위해 진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자들이 있길 원합니다. 사명은 다른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받은 내가 알기에 지켜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부담을 감당합시다. 이 나라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시다. 주님이 부르신 그 곳을 사수하며 새로운대한민국과이세대를위해간절히기도할때하나님께서이땅에 주셨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최근 게시물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