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제사(시 50:21~23)
예배와 심판
시편 50편 1~6절에는 예배와 심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보좌 앞에 가서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말과 행실에 대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때 무엇으로 심판 하실까요? 심판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전능한 심판자이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분입니다. 1절에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자기 앞으로 불러 모으시고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우리게 비추실 것입니다. 그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아름다운 시온은 심판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 가지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키는 불과 광풍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임재하신 그 영광스런 임재하심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광채에 임재하심을 묘사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임재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도 그렇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셨을 때 아름다운 시온이 거룩한 빛으로 가득하며 시온에서 위로 하늘 아래로 땅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시고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모든 인류를 모으시고 5절에 나온 것처럼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들을 하나님이 그분의 특별한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거기서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이 예배로 나와 언약을 맺은 사람들 제사로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은 언약적 심판입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럼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그분의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7~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을 보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제물을 드렸느냐에 대해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내 서원을 갚으며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4~15)” 말씀처럼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행실(악행)과 감사
형식적인 제물로 드린 예배, 껍데기 종교, 하나님에 대한 중심은 없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대가 될 때, 즉 예배가 죽으면 인간의 윤리가 죽는 것입니다. 16~17절에서 말하는 진정한 악인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무슨 권리로 내 법을 말하고 내 언약을 네 입에 담아서 가르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중심인 찬양과 설교인데 설교가 만약 악으로 넘어가 버리면 사람들의 윤리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인격도 죽는 것입니다. 호세아 시대에도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죽어 있었습니다. 호세아서 4장에 보면 우상에 대한 제사만 살아 있고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져 무엇이 선한 행동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공의인지가 분별이 안 되는 시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신문 기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 가운데 강물처럼 흐르게 기도하며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길 기다렸는데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이해하시는 걸로 착각하게 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 마음이 점점 완악해지고 말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내 눈 앞에 낱낱이 다 드러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죽은 우리의 예배가 다시 살려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15절에 환란 날에는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하는 것과 같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옳은 행위를 하게 됩니다.
옳은 행위
하나님과의 대화와 찬양이 우리의 예배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1960년대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부터 현대 음악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히피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들의 락 뮤직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을 때 갈보리 채플이 락 뮤직을 기독교 음악으로 받아들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 예배당으로 들어왔고 그들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살고 계신다는 의미이고 우리의 찬양 중에 거하시고 변함없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고 그랬습니다. 감사는 찬양이고 찬양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시편 22편 3절, 히브리서 13장 15절처럼 감사의 제사 가운데 하나님은 거하시며 찬양 가운데 임재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1960년대 갈보리 채플 척 스미스 목사가 현대 교회의 예배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교회들의 예배가 산소 호흡기를 꽂고 여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시 이 교회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제 3자의 새로운 예배의 길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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