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땅에 임하는 삶 (요 6:1-15)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이런 저런 행동들을 멈추게 하시고, 주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태와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온 무리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멈추고 잔디에 앉았을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축사하시고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 되십니다.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대적으로부터 지켜주시는 목자이십니다. 황량한 광야에서도, 주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우리의 도전은 그러한 주님을 기억하는 삶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10명의 나병 환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고백한 사람은 한명뿐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주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주님이 이 민족을 어떻게 지키시고 축복하셨는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길 축원합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기대할 때, 초자연적인 그의 역사가 우리 삶에 채워질 것입니다.
땅의 방법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라.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3).”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져 줄 사람을 찾고는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삶을 의지하려 하고, 그래서 지도자를 뽑을 때에도 윤택한 의식주 생활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기도 합니다. 본문의 무리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굶주림을 해결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자, 예수님을 왕 삼으려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무리를 떠난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장소,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신 것입니다. 본문의 저자인 요한은 ‘어디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요2:9).”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요4:11).”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영원히 솟아오르는 생수가, 어디서 시작됩니까?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곤란한 일들과 여러 문제들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라 말씀하십니다. 머리 굴리고 땅의 방법으로 계산하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갖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길 기다리십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고비를 만날 때, 주님께 나아갑시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합시다. 하늘의 능력으로 우리 삶을 돌보시며 온전한 길로 이끄시는 좋으신 아버지를 경험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를 통해 일어나게 하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가 받은 은혜와 믿음의 축복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유업과 선교의 유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드림의 유업입니다. 이 나라가 가장 가난할 때, 가장 무지할 때, 그럼에도 주님께 전부를 드렸던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 곳곳과 열방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아낌없이 가진 것을 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께 드리는 삶의 훈련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강대상 앞으로 달려 나와 주님께 생명을 드리겠다고 두 손들어 외치지만, 실상 돈, 인간 관계, 취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과 취향, 아끼는 관계와 물질을 주님께 드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던 부자 청년은, 그의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슬픈 낯빛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작은 물고기와 떡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본문 속 1~2만명으로 예상되는 많은 인파 속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온 자는, 한 소년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준비해 온 도시락을 꼭 쥐고, 상황을 살피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드림의 은혜가 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 내 전부를 내어드릴 수 있는 믿음의 은혜가 삶을 주장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오병이어를 주님이 요청하실 때, 순종합시다. 우리의 드림이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며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하는 기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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