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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삼하 7:1-7)


다윗 왕의 시대적 사명 : 이가봇을 끝내는 것

사무엘서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하기까지의 여정과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마침내 남유다의 왕에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며,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오는 일을 진행합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왜 법궤를 찾아오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았을까요? 그 이유는 ‘이가봇의 시대’를 끝내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신정적 통치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가봇’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삼상4:19, 21).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교집합 구간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가봇’ 사건입니다.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도 바로 이가봇을 끝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통치 20년 동안 자신의 모든 힘과 권위를 동원하여 사위인 다윗을 죽이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이러한 이스라엘 초대 왕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정확하게 하나님 마음의 궤적을 좇아 살면서 그의 모든 힘과 권위와 자원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아 오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시대적 사명을 명확하게 알았던 지도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체면이 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원했습니다(삼하6:22). 스스로 보기에 천해 보일지라도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더 낮아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실, 자기 영광과 체면치레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 마음으로, 위선 가운데 하는 구제와 기도가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다. 우리 내면의 위선과 허례허식이 제거되고 다윗과 같이 이보다 더 낮아질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하려는 이유와 동기 : 임재를 넘어 영광으로

삼하 7:1은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이 궁에 평안히 살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사사기에는 소위 ‘배 부르고 등 따실 때’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시작되는 반면, 다윗의 전개는 좀 다릅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2)". 다윗에게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고 싶은 소원함이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짓길 원했을까요? 사실 이러한 발상은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이 최초로 해낸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당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삼하7:6-7), 이스라엘 백성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삼하7:6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니셨습니다. 장막과 성막은 방문하고 잠시 머무르는 portable, visitation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집은 habitation 즉, 거주의 개념입니다. 다윗의 소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집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려고 했던 동기와 이유였습니다. 그는 개인의 임재와 평안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국가적 영광을 원했습니다. 집을 헬라어로 오이코스라고 하는데 '통치와 다스림'이라는 경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다윗의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에 영원히 거주해주세요'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다스리실 진정한 왕은 하나님 당신이십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 언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계시

다윗의 소원에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삼하7:5, 대상17:4). 다윗이 손에 피를 많이 묻혔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선하고 좋은 동기의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타이밍과 우리의 타이밍이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삼하7:11b-13). 다윗 언약은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다윗의 이름을 높이겠다는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에게 샬롬을 주겠다는 약속이며, 세 번째는 네 왕좌와 가문이 무고할 것이고 네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그는 나무와 벽돌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했지만 나중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하나님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 에클레시아는 로마제국을 쓰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주님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게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삶의 자리에 더불어 다니시면서, 또한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이나 공간에서 당신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과 성산이라는 교회의 이중구조이고 우리의 교회론입니다. 이 두가지가 함께할 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성전을 정화하셨을 뿐만 아니라(요2:16-17),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이라는 공간을 도외시하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집을 향한 열성과 열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향한 열심이 오늘 우리에게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향한 열심은, 아버지의 임재와 영광을 향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방해받거나, 아버지의 집을 해치거나, 임재를 거두어 가는 것이 있거나, 외식과 위선이 우리에게 있을 때, 그렇게 역사하는 영들을 대적하고 중보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열심히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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