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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장 끈질기게 찾아간 과부처럼… 끝까지 기도해야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1~22)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끝까지 이루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그 뜻이 이루어지길 갈망했던 삶에서 비롯된다. 다윗은 하늘의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랐다.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위대함이 선포되며 날마다 주님의 높으신 뜻이 이뤄지길 구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기이한 일을 시작했다. 모세의 성막에서 제사가 드려지는 것과 별개로, 다윗성에 따로 텐트를 치고 법궤를 옮겨와 그 안에서 밤낮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뜻을 선포할 레위인을 세운 것이다. 시편 22편 3절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께서 멈추지 않는 찬양과 기도의 장막에 거하셨다.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땅에 드러났다. 주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당신의 위대한 뜻이 이뤄지길 바라신다. 주님과 동역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점으로 보이는 세상을 운영하도록 도전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기도는 하늘에서 이뤄진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는 교회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그 첫 순간부터 하늘을 매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열쇠를 맡기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기도의 집에서 주야로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그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가 이방인과 같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란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미치는 모든 시간과 장소를 뜻한다. 우리는 죽어서나 갈 ‘천당’이 아니라 오늘도 이 땅을 침노해오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속한 자들이다. 죄의 저주로 고통받는 이 땅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필요로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열과 분쟁들을 누가 진정 해결할 수 있는가.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마침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전한 공의가 이뤄질 것이다. 기도의 집에서는 약속된 그날이 속히 임하도록 기도한다. 그러나 또한 그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역사하고 확장되기를 기도한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6~8)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불의한 재판장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는 과부의 비유를 들어 끝까지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 재판장은 무신론자에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 불의한 사람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한다. 이유는 하나이다. 과부가 끊임없이 찾아와서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며 물으셨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의 과부처럼 성도가 끝까지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풀어지지 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은 영어성경 NIV에서는 ‘저스티스(justice)’라고 번역돼있다. 헬라어 원문에도 이 ‘원한’이라는 단어에 ‘정의’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이 조롱당함에 원통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이 탈취당하고, 어둠이 대신하고 있음에 정의가 이뤄지도록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부재야말로 성도들이 주야로 기도하게 하는 원한이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날이 오기까지 교회는 주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정의가 무너지고 진정한 공의가 세워질 것이다. 누가 예수님 한 분, 그 한 가지(one thing)만을 구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누가 내 삶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뜻을 고하는 중보자가 될 수 있는가. 주님의 마음을 받은 신부들이다. 예수님은 과부와 같은 기도를 일으키고 계신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요청하는 기도를 일으키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의 선하고 높은 뜻이 오늘도 이 땅에 이뤄지길, 마침내 주님의 온전한 공의가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출처_국민일보] [원본링크]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229830

글_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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