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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과 음란의 새 기준

마5:27~32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 새 율법의 삶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세로부터 전수된 율법은 이제 옛 사람에게 전해진 바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율법은 겉으로 보이는 외적 준수에 머물렀지만, 주님의 새 법은 우리의 중심에서부터 말씀이 수호되어 내적 완성에 이르기를 요구합니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이 시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중심이 바로 서도록 다루실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싸워야 할 마지막 때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새 율법으로 내면을 단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음란의 새 기준, “보고 마음에 품은즉 이미 간음하였다.”

‘분노와 혈기’의 문제로 육신의 정욕에 대한 새 율법을 선포하신 주님은, 이어서 ‘간음’이란 죄로 안목의 정욕에 대한 새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개역개정 본문과는 달리 개역한글 본문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순서가 바뀌어서 번역되었는데, 사실 개역한글 본문이 헬라어의 의미와 더 가깝습니다. 주님의 새 법에 따르면, 육체로 간음을 실행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품어진 음욕만으로 정죄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보는 행위는 ‘블레포’란 단어로 단순히 눈으로 사물을 인지한다는 의미보다는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다’,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보다’란 뜻입니다. 마치 우리가 대화할 때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때로 눈빛만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듯이, 심리가 작동되어 의도와 감정이 투여된 시선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기준에서는 음란한 욕구를 품고 이성을 응시하는 것, 음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음행을 실행한 간음으로 간주됩니다. 나의 음욕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이성에게서도 음란의 죄성을 끌어내며 그 죄를 요청하는 행위가 이미 정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심판받아야 할 음란의 죄가 얼마나 많이 열려있습니까? 내적 음란의 동기도 죄의 실행이라 말씀하신 주님의 새 기준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죄를 자복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새 법을 적용하시고 실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숨겨질 수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내면의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합시다.


음란은 눈을 통해 열린다

예수님은 이어서 마음에서부터 새 법을 지켜낼 수 있도록 음란의 문을 여는 통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바로, ‘눈’입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음란과 간음의 작동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언제 어디에서 본 것이든, 시각으로 전달된 이미지가 우리도 모르게 음란의 문을 열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눈으로 자행될 수 있는 죄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오른 눈이 우리를 실족케 한다면 차라리 빼어 버리며, 또한 오른 손이 우리를 실족케 한다면 찍어 내버리라 하십니다. ‘손이 깨끗한 자’란 표현이 있듯이, 본문에서 손은 죄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눈으로 시작된 죄가 실제 행위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눈은 영혼의 창과 같아서, 눈을 통해 영적 작동들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욥기서의 주인공인 욥이 하나님께서 자랑하실만큼 의로울 수 있던 힘의 원천 중 하나는 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는 눈과의 약속을 세움으로 경건과 거룩함을 유지하며 죄와 구별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전하고 정직한자라 인정받았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욥처럼 죄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눈을 보호해야 합니다. 눈을 통해 음란함이 흘러들어올 수 있고, 눈을 통해 음란함을 흘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할 때 ‘눈짓’을 했습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또한 잠언서 6장은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고 합니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보는 것을 통해 일하고 보는 것을 통해 여가생활을 누리는 이 시대, 거룩한 안대가 씌워지길 축복합니다.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지 않도록 눈에 파수꾼을 세웁시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2:14).”


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