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AI 시대…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 붙들어야
얼마 전 무인점포로 운영되는 가구점이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영화관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무인 시스템으로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활용은 더 이상 특정 업계나 업종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생활 곳곳에서 초지능, 초연결 시스템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나 몇몇 노인은 덩그러니 놓인 기계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명백히 이전 세대의 이해와 동의를 넘어서는 급변의 때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적 융합을 넘어, 하나로 연결되는 사회를 뒷받침할 사상적 통합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믿음을 전수할 것인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 이처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비유는 생명과 진리, 전통과 종교가 구별돼야 함을 강하게 도전한다. ‘인격적 고상함’이란 명목으로 인본주의가 매섭게 교회를 몰아붙이는 이 시대, 참 생명이 전달되기 위해 반드시 본질과 비본질이 구별돼야 한다. 본질과 비본질의 구별은 다음세대를 살리는 일에 핵심이다. 이 기준이 애매모호하면 진리가 진리로, 생명이 생명으로 전달될 수 없다. 수천년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된다.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다음세대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진리 안에 역사하는 생명을 다음세대가 경험하게 해야 한다. 무미건조한 신학이나 율법주의적 맹신이 아닌 생명으로 역사하는 진리, 진리 안에 충만한 생명이 전달돼야 한다. 진리는 생명으로 드러나고 검증된다. 생명은 진리의 결과이며 진행형이다. 이는 곧 십자가 복음과 성령이다. 문제는 진리와 생명, 즉 십자가와 성령을 어떻게 다음세대의 가슴에 심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적 고민을 풀기 위해, 다시 한번 교회의 본질적 요소들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예배다. 비본질과 구별된 진리와 생명이 드러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신앙의 삶이 회복돼야 한다. 기도가 종교 활동이 돼선 안 된다. 예배가 고리타분한 형식의 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