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
에배소서 4:20~24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 성장이 멈춰버린 자들
새로운 처소로 옮겨지면서 드리는 첫 주일예배, 오늘 만나게 된 본문도 ‘새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취할 여호와의 군대로 새롭게 정렬하듯, 우리도 이 시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로운 일을 감당하는 자들로 서야 합니다. 새로운 기름부으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에베소서 4장 본문은 ‘새 사람을 입으라’ 명합니다. 각 성도들이 머리되신 주님과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날 것을 말하던 바울은 이어지는 엡4:17~19으로 이러한 생명의 작용을 멈춘 자들이 어떤 상태에 빠지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안에서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져 스스로 세상의 방탕함에 자신을 내어주는 이방인과 같아집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어둠의 나라에 매인 자들처럼, 세상에 떠밀려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성장을 멈추지 말것을 경고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 위해, 거룩한 씨름을 해야 합니다. 성장을 멈춘 자들은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조차 힘겨워 질 것입니다. 혹시 자라나고 있지 않다면, 주님의 생명이 왜 삶에서 작동되지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생명안에 거합시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 날마다 주님안에서 자라납시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육신의 일과 죄의 습관을 버리라
새 사람을 입기 위해 행할 첫 번째 전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벗어지지 않는다면,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새 사람이 이전의 나, 즉 옛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다 침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충돌의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속사람 영이 잠들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에베소서 5장에서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옛 사람을 벗는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삶에서 체화된 생활방식과 가치체계, 습관들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를 돌며 보낸 시간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지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런 변화의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바울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일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세상의 문화를 따라 사는 삶이 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에 속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쉽게 타협합니다. 내가 일하는 직장의 문화, 가정의 문화,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에 맞추어 살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극단적인 우상숭배가 아닌 이상, 세상의 요구에 어느 정도 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면, 이를 악물고 삶에서 끊어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때로 희생하더라도, 마귀의 일에 내 삶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시기와 분쟁이 있음으로 인해 그들이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