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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직임과 오중사역2


에배소서 4:11~13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음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방법, 오중 직임과 오중 사역

주님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오늘, 많은 신학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도행전의 교회, 1세기 초대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외치며 구할 때 주의해야 하는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지나친 은사주의적 관점과 성령님의 운행하심과 상관없는 극단적 공동체 의식입니다. 어떤 이들은 초대교회의 지표를 은사적 현상과 열매로 한정하여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영적 자발성으로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가 아닌, 율법적 강압에 의한 공동체를 초대교회로 착각합니다. 사도행전 2장으로 마침내 출범한 초대교회를 생각해봅시다. 그들 중 누구도 강요와 압박에 의해 재산을 팔아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날마다 함께 모였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한 영으로 한 마음과 한 뜻 되게 하시자, 한 몸 되는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강제로 포기하도록 억압하는 체제와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 된 교회에 대한 분명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Apostle-왕의 보내심을 받은 자’와 ‘Ecclesia-밖으로 부름 받은자들’이란 정치적, 군사적 단어로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1세기 교회의 영성과 문화와 구조의 회복

알파의 때에 이어 오메가의 때에 완성적인 교회로 서기 위해, 오중직임이란 질서 안에서 오중 사역이 풀어져야 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 안에 오중 직임이 세워진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오중 사역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일까요? 사도를 비롯한 다섯 직임이 어떻게 교회의 기능을 활성화 하며 교회를 견고케 할까요? 우리가 보아야 할 오중 사역의 세가지 국면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초대교회, 곧 1세기 사도적 교회의 영성과 문화와 구조의 회복입니다. 1세기 초대교회의 영성과 문화와 구조의 모든 중심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서신을 시작하며 ‘내가 먼저 쓴 글’, 즉 누가복음의 내용과 사도행전의 내용이 달라짐을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사복음서의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머무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늘의 이야기를 땅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나의 왕국이 우선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이후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도적 제자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보이지 않는 성령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오중 직임의 핵심은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들에 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영성이, 1세기 초대교회의 영성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성령님을 초청하고, 잠이 들면서 성령님과 인사하고,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순간마다 성령님과의 친밀감 안에서 동행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영성이 우리의 문화, Life Style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사수하며 날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영성으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기도와 예배의 삶, 말씀과 금식의 삶은 우리의 육이 영에 복종 되게 합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경험들이 잠잠하여 지고, 영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또한 교회의 구조가 됩니다. 바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존재함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모여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뿐 아니라 또한 성산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나라를 운반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함께 모이는 예배의 처소 넘어, 각 사람에게 주어진 분깃과 땅에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오중 직임은 초대교회의 영성과 문화와 구조와 맞물려 있습니다.

둘째, 교회의 사도성

오중 직임과 오중 사역의 두 번째 국면에 교회의 사도성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이 ‘Apostoloi’입니다. 사도(Apostle)는 왕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교회의 사도성은 교회로 모인 우리 모두가 보내심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도적 지도자들을 교회의 질서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만이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빌립 집사와 스데반 집사는 열두 사도와 같은 영성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질서와 상관없이, 말씀을 가르치고 예언적으로 기도하고 강한 치유의 능력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탁월하게 은사가 부어진 자들이나, 권위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각 사람의 다양한 기능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풍성해집니다. 땅 끝까지 달려가도록 명령 받은 교회의 사도성이 더 충만히 회복됩니다. 교회로 부르심 받은 모든 성도들이 사도성을 가지고, 사도적 권세를 사용하길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파송 하시며 주신 사도적 권능으로 마귀의 일을 꾸짖고, 어둠의 역사들을 멈추며,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임하게 합시다.

셋째, 신정적 통치구조

세 번째는 신정적 통치 구조입니다. 주님은 오중직임으로 교회가 인간적 모임이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운반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존경받는 한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 역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한국 교회의 연약함을 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 선택과 결정이 하나님의 나라 전체에 어려움이 될지라도, 개교회의 유익이 된다면 그를 위한 선택을 했었습니다. 또한, 개교회가 때로 양보하고 조금 희생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전체가 풍성해질 수 있는 일에도 내 교회가 겪을 불편함과 손해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유익한 일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보다 큽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회의 연약함을 욕하면서 나만 특별하고 의로워 보이고자 한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 나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탐욕일 수 있습니다. 오중 직임은 그 기름부음과 각 기능들이 신정적 통치구조 안에서 행해지도록 돕습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이끄는 듯 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신정적 통치구조가 이루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로 온 이스라엘이 다스려지길 구했던 다윗은 그가 받은 사도적 권위 아래 선지자들을 배치하였습니다. 하늘의 일을 보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주께서 이끄는 길로 가기 위해, 오중 직임과 오중 사역이 건강하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듯한 교회를 함께 꿈꿉시다. 사도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각 영역과 온 땅에 운반하는 교회로 섭시다. 이제, 성령으로 보내심 받은 성도들, 사도적 교회가 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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